일본에서 외노자 생활을 하는데 외로운 적은 별로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같이 해외 취업 센터 동기로 넘어온 사람들이 많았고, 같은 회사에도 여럿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는 같은 부서에 그룹만 다르게 근무하고 있는지라, 담당하는 일은 달라도 종종 점심도 먹고 교류할 기회는 있었고,
가끔 동기 모임도 갖고 잘 지냅니다.
남녀 비율이 아주 균형잡힌 1대1 멤버로 4인 테이블이 꽉 차는 구성인데,
일본 생활을 그만두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돌아가야만 하는 한 친구가 생겨서,
짝이 맞지 않게 되어버린 건 아쉽게 되었습니다만...
그 친구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할겸, 회사를 졸업한 것도 격려할겸 모인 술자리였습니다.
뭔가 사건이 일어난 것 같은 불안한 서술이지만, 사실 끝까지 잘 지냈고 또 보기로 했으니 염려는 마세요.
코로나 재택근무로 회사를 가지 못한 채 오랜만의 모임이라 근황을 주고받기만 해도 시간이 금방 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꽤 흘러서 태블릿으로 서너번 추가 주문한 음식이 다 떨어져 갈 무렵...
여자 동기가 모두에게 물었습니다.
"서울 시장 소식, 너네는 알고 있었어? 난 어제서야 알았어!"
5시 실종 신고 소식부터 계속 정보를 새로고침하고 애타는 마음으로 여기저기 온라인으로 돌아다녔던 건
저뿐 아니라 그 자리의 다른 친구들도 그랬던 모양이었습니다.
"외신에도 많이 나오던데. 일본 주요 뉴스에도 뜨고."
"그래도 서울 시장은 세계적으로 중요한 자리에 있고, 포럼에도 여러 번 참석하신 분이니까."
그것도 아마 최근의 시장님을 본 여러 사람들의 공통된 견해일 것 같습니다.
"네이버랑 다음뉴스에서 댓글 보니 엄청 험악하더라."
아마 이 말을 들으면서 제 표정은 관리가 안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저, 네이버 다음뉴스는 정신 건강에 좋지 않으니까 여론이라고 믿지 않는 게 좋다는 말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딸이 제일 불쌍한 것 같아."
본인이 신고하고, 신고하면서 수 시간 전에 유언 같은 이상한 말을 들었다는 걸 왜 늦게서야 신고했을까, 그렇게 자책하지 않겠냐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따님에 대해 잘 모르니 거기에 대답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건, 누구나 별일 아니라고 생각하다가 이상한 일이 생긴 뒤에 되새겨보니 사실 이상했던 위화감이 느껴지는 것이라,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죠. 그걸 못 알아차린 책임이란 건 쉽게 탓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문제의 초점이 옮겨집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불쌍해."
음... 피해자... 고소인을 말하는 거지? 했는데 그 차이를 이해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습니다.
"자신이 억울하면 끝까지 싸워서 결론을 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 여동기 말을 듣던 여동기도 복잡한 표정으로, 음~ 그런 것 같은데... 그걸 우리가 이해할 수는 없으니... 이런 입장이었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덩그라니 남겨져서, 혼자만 상황을 면한 거잖아? 서울 시장 직책도 두고..."
이해합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고, 이해할 수가 없었어.
저는 말이 정리가 되지도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까 아주 조금은 이해가 가더라.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건 클리앙에 있던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5163835CLIEN 이 글 덕분입니다.
말한대로 그가 미투 소식을 듣고 갑작스럽게 정리한 건 분명해.
그러나, 그건 자기 당 사람들과 주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것이였어.
그리고 당신 스스로가 1분 1초도 그런 불명예를 견딜 수가 없었던 거야.
우린 이렇게 떠나보낸 사람들이 또 많이 있잖아.
옆에서 제 말을 들은 여동기가 "응... 노무현 대통령도 있었지" 이렇게 동의해줬습니다.
저는 노회찬 의원이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노회찬 의원이 누구야?"
그는 정의당 의원으로 정치자금 논란이 갑자기 자신에게 불어닥칠 때 비슷하게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그건 자신의 오명에 견딜 수 없었던 결과였지.
이건 특별히 이상한 선택이 아니야.
넘겨짚은 과정이라 미안하지만, 검찰은 채널A와 결탁하여 유시민 이사장을 증언만 하면 보내버릴 수 있다고 했다가 발각된 사실이 있었던 만큼,
이번도 솔직히 나는 셋업에 가까운 무언가라 생각해.
2017년의 사람을 섭외하고, 실종하자마자 일간 조선은 사망설을 바로 준비된 것처럼 뿌렸고, 카톡에는 고소 내용이라는 서로 다른 내용이 서너가지는 돌아다니면서 유언비어로 살포되고 있지.
조국 재판에서 검찰이 비웃음을 당했으니, 이번 각본은 더욱더 치밀하고 기본 사실 관계가 맞도록 구성되어 있었겠지.
그런 트랩이 자기를 죄어온다고 알아차렸을 때, 박원순 시장이 스스로 살아날 길이 없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90년대 변호사로서 성추행 개념이 명확하지 않던 시절, 성추행으로 승소를 이끌어낸 사람이야!
그렇게 말하자 잠깐 정적이 돌았습니다. 저는 술자리라 마스크도 없는데 침이 너무 튀지 않았는지 무척 신경이 쓰여서 입을 급히 다물었습니다.
"왜 자신의 무고를 떳떳하다면 밝히지 않는 거야? 그게 피해자와 자신의 가족에 대한 도리 아냐?"
우린 그렇게 한 사람을 봤잖아?
"그게 누군데?"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장관이 1년도 넘게 끊임없이 시달리고 여론이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갈려버렸지.
이렇게 말하자 주변의 동기도 끄덕이는 모습이었습니다.
법적 싸움은 수 년동안 치밀하게 싸워야 하고, 여론이 그걸 또다시 버티기엔 너무나 피로해할테니까요.
결론이 애매해지자 "비서를 남자로 다 뽑아야 해." 라며 그 여동기는 마무리했습니다.
음... 그러면 또 성차별 아닌가? 우리는 또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뭔가 그 이후로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 이런 화두가 또 같은 동기 입에서 나와서 일본의 펀쿨섹좌를 다시 소환하여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정치에 무관심한 대가로 이 사람이 차기총리가 된다더라. 이런 결론이 나오니 뭔가 이 동기에게 동의하지 않는 말만 잔뜩 해준 것 같네요.
겸사겸사 한국의 최신 밈도 소환하고 의미는 있었습니다. 특히 이 자리에서 결론이 비슷한 것 같더군요.
일본에 살아보니, 한국의 좋은 점이 더 크게 느껴진다.
나오기 전과 후의 일본의 인상이 크게 변했습니다.
타지 살이가 원래 그런 것에 가깝겠지만, 근래의 변화는 너무나 극적이라는데 동의를 했지요.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더 나이먹어서 너무 늦지 않게 계획을 세우는게 좋겠다는 그런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이번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 스스로도 "내가 뽑은 시장님"에 대한 정리를 좀 더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여러 사람들의 길잡이를 통해, 저도 제 나름대로의 결론을 낼 수 있었습니다.
당분간 갈 수는 없지만, 온라인 헌화 버튼을 신중히 클릭하면서, 마음 속으로 보내드렸습니다.
어쩌면 시장님은 본인이 생각한 가장 최고의 항의를 한 것이 아닐까요.
고소인에겐 본인의 목숨으로 다시 생각하게 만들고, 이 사건을 셋업한 사람에게 가장 큰 당혹감을 안겨주도록 말이죠.
그리고 주변 사람과 가족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굳세게 있어줄 것이라는 마음을 갖고 마지막 안녕을 남겼을 것 같습니다.
물론 그걸 단정할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