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쿠버에 있었던 일들을 중심으로 적었습니다.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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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있는 전문대 학생들과 함께 밴쿠버로 갔다.
벤쿠버에 도착하자 우리는 각자 홈스테이를 배정받았다. 모두 다른 집으로 흩어졌다. 학교는 같은 곳에서 수업을 듣지만 영어실력에 따라서 반이 나뉘었다. 나는 영어를 잘 못해서 낮은 반으로 들어갔다.
대략 2달정도는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이력서를 작성하고 나머지 기간은 인턴으로 각자의 전공에 맞게 일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영어 말하기, 듣기가 여전히 거의 안 되는 상태에서 수업을 들으니 정말 힘들었다. 필리핀에서의 1:1 수업과는 차원이 달랐다. 나 때문에 수업이 방해될까 봐 내가 이해 못했다고 다시 말해달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해를 못하고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돌아가면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상황도 종종 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업을 다 듣고 나면 긴장을 너무 한탓에 집에 와서 쓰러져 잠들곤 했다.
사실 벤쿠버 올 때 돈이 거의 없었다. 조금은 가지고 왔지만 대중교통 티켓 비용이 생각보다 비싸고 생활비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돈을 아껴야 했다. 일단 돈을 아끼기 위해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우벤유)에 들어가서 한인을 만나 150불 주고 중고자전거를 샀다. 헬멧을 안 쓰면 벌금이 세다고 들어서 헬멧도 거금 30불을 들여 구매했다. 그렇게 혼자 자전거로 등하교를 시작하였다. 당시 같이 수업 듣던 친구들에겐 (형, 동생 등 다양했다.) 원래 자전거 타는 걸 좋아하고 운동하고 싶어서 타고 다니는 거라고 했다.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돈이 없다고 말하기 창피했다.
수업이 끝나고 다 같이 밥을 먹거나 주변 관광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문제는 영어로 대화가 거의 안되었다. (실제로 모국어를 영어로 쓰는 사람들 만나면 토익에서 듣는 것과 급이 다르다. 엄청 빨랐다.) 그래서 고민하던 중에 대형마트 안에 PC 수리점이 보였다. 간단하게 데이터 백업 후에 윈도우를 재설치를 해주는데 150~200불을 받는 걸로 적혀있었다. 한국에서는 2~3만 원이면 포멧 해주던 시기였는데 거의 8~10배를 더 받고 있었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원래 캐나다는 기본 시급이 높아서 저런 건 비싸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을 상대로 내가 컴퓨터를 수리해주고 돈을 받으면 어떨까 하고 우벤유라는 사이트에 "30~50불에 망가진 컴퓨터 수리, 컴퓨터 포멧등 도와드립니다. "라고 적었다. 장소는 학교 주변에서 만나는 걸 원했고 상대가 출장을 원하면 추가금을 받고 자전거 타고 내가 직접 가는 방식이었다.
교내 전산실에서 아르바이트 한 경험도 있고 피씨방에서 알바도 했던 터라 간단한 포멧이나 컴퓨터 조립은 가능했기에 가서 "보고 못 고치면 못 고친다고 말하고 와야지." 하는 밑져야 본전 마인드로 글을 올렸다.
일주일에 연락이 3~4통씩 계속 왔다. 고치고 나서는 청소까지 깨끗이 싹 해드렸다. 처음에는 소프트웨어만 설치를 도와주다가 나중에는 구글링을 도움으로 노트북 분해까지 하게 되었다. 하드디스크가 망가지면 수수료 30%를 받고 마트에서 구매해서 교환을 해줬고 키보드가 망가지면 키보드 하판을 주문해서 교환도 해주었다.
그렇게 입소문이 나서 나중에는 노트북을 2~3대 회수해와서 집에서 한 번에 고쳐서 드리고 많게는 일주일에 500불씩도 벌기도 하였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는 친구들과 로키산맥(벤프) 4박 5일을 다녀왔다. 지구에 태어났으면 무리를 해서라도 벤프는 한번 다녀오길 추천한다.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벤프만큼 자연의 위대함을 느껴본 적은 없었다.
3달 정도 지나자 영어 듣기와 말하기가 많이 늘었다. 그 외에 다양한 문화를 많이 배웠다. 홈스테이를 하니 그 나라의 문화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친구를 불러서 파티를 하는 바비큐 문화, 부모님이 집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문화, 동네마다 있는 공원과 산책을 하며 여유를 즐기는 문화. 자전거를 타기에 엄청 잘되어있는 자전거 전용도로와 법규. 앞서 다녀왔던 필리핀과 비교했을 때 너무나 다른 문화였고 이상적으로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인턴쉽을 할 시기가 왔고 나는 여러 곳에 이력서를 보냈고 그중 War room이라는 비디오 프로덕션 회사에 친한 동생과 같이 인턴으로 일을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의 기업문화는 엄청 자율적이었다. 아침에 미팅을 하는데 각자 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말하고 현재 진행상태가 언제까지이며 언제까지는 완료될 것 같다. 누구와의 협업을 필요로 한다. 등의 자신의 원하는 것을 돌아가면서 일단 다 말하고 그 모든 걸 듣고 사장(매니저)이 직원들의 일정을 조율하며 스케줄을 관리했다. 점심이 되면 각자 나가서 밥을 먹거나 미리 약속을 잡아 나가서 동네 공원에서 밥을 먹었고 저녁에는 사장에게 "Bye! " 한마디 하고 다들 칼퇴근을 하였다.
나는 벤쿠버에 살고싶었다. 별거 아닌 컴퓨터 수리만으로도 충분히 큰돈을 벌어 먹고 살수 있을것 같았고 영어도 공부가 되니 나중에 한국을 가더라도 영어를 잘하면 뭐라도 하고 살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였다. 가능하다면 벤쿠버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하며 해외생활을 즐겼다. 살면서 처음으로 카지노라는 곳을 가보기도 하였고, 미국으로 내려가 시애틀에 있는 스타벅스 1호 점도 가보았다. 그렇게 시간 가는지 모르게 지내고 있었다. 달력에 표시해둔 외할머니 생신이 되어서 전화를 드렸더니 엄마가 병원에 입원했다고 한다. 화장실에서 미끄러져서 심하게 넘어져서 무릎이 완전히 꺾였다는 것이다.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고 당장 화장실도 못 가는 심각한 상태라고 하였다. 외할머니도 건강이 좋지 않으신 상태라서 누구를 간병해줄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엄마를 위해 남들보다 조금 더 빨리 귀국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외삼촌이 그동안 돌봐주신다고 해서 정상적인 날자에 귀국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 엄마를 간병하기 시작했다.
-계속
감탄과 더불어 제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고맙습니다.
Jasper도 추천합니다. 밴프보다 사람손이 덜 탄 자연을 느낄 수 있어요.
생각하는 것도 쉬운게 아닌데,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 그것도 익숙한 환경이 아닌 외국에서,,
글 하나하나가 짜임새가 있고, 처음부터 큰 그림을 그려놓고 하나씩 채우는 느낌입니다.
영상에 익숙해서 글에 빠지기가 어려운 시대에 참,,
에피소드 하나하나 재밌네요.
제가 다 부끄럽네요
행복하세요
기다려집니다
By Iphone 11
앞으로도 올려주시는글 잘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명 깊게 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