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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는 편입학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여기서 또 하라는 영어공부는 안 하고 며칠을 합격수기만 찾아서 엄청나게 읽었다.
편입 관련 커뮤니티 사이트를 가입했고, 합격 수기 책도 구매했다. 합격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고 정리하였다.
학교마다 달랐지만 대체로 영어실력, 전에 다니던 학교, 전공시험, 면접의 순서로 중요해 보였다.
편입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아주 다양했지만 성공수기를 읽으면 대부분 좋은 대학을 다니던 사람이 더 좋은 대학으로 옮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나와 비슷하게 노 베이스에서 시작해서 편입을 성공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아마도 이유는 좋은 대학을 다니던 사람들은 이미 영어에 대한 개념이 있을 것이고, 공부하는 습관도 가지고 있을 확률도 높고, 전에 다니던 학교에 대한 이점 등이 있었을 것이다.
편입의 종류도 학사편입(대학교 졸업생), 일반편입(2학년 마치고) 이렇게 두 가지가 있었다. 일반편입과 학사편입은 뽑는 정원이 분리되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금더 응시생이 적은 학사편입이 유리하다고 들었다. 나는 높은 합격 확률을 높이고 싶어서 학사편입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전문대생이고 2년을 더 쓸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독학사-학점은행제 라는걸 알게 되고, 온라인 수업을 들으면 학점을 받고 학점이 모이면 4년제 학위를 받은 것과 같아서 학사편입 자격이 된다는 걸 알았다.
곧바로 인터넷에서 학점은행제 컨설팅을 받고 등록하였다. 학점은행제는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가 없어서 전재산을 다 넣어서 일단 등록을 하였다. 생활비가 부족해져서 휴대폰을 없앴고, 주말에는 알바를 다녔다.
번 돈으로는 남들이 읽어서 좋았다는 책은 다 샀다. 책을 펼치고 다시 지겨운 문법과 단어를 외우게 되었다.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었지만 실제로 공부한 시간은 5시간도 안되었던 것 같다. 공부는 안 했지만 최대한 오래 앉아있으려고 노력했다.
열람실에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자극을 받고 '저 할아버지가 집 갈 때까지는 나도 안 간다' 마인드로 버틴 적도 꽤 많았다. 그렇게 5달 정도? 했던 것 같다. 모의고사 같은 걸 봤더니 풀 수 있던 문제보다 못 푼 문제가 70%는 되었던 것 같다. 이게 무슨 말이지? 싶을 정도로 난해했다. 한국어로 된 해설집을 읽어봐도 이해가 잘 안 되는 수준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의 집중력은 한계가 있는데 알바와 학점은행제를 병행했던 탓도 컸던 것 같다.
나는 '남은 기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될까?' 수기를 읽었던 기억으로는 이 시기에 확신을 가지고 70%를 풀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이었다. 내 상황이 너무 암담했다. 주말 알바를 안 가고 공부만 했다면 상황이 나아졌을까? 처음부터 하루 공부시간이 5시간이 아니고 10시간, 15시간이었으면 달라졌을까? 하고 과거를 생각하면서 계속 며칠을 후회했다. 하루 공부시간을 다시 계산하고 남은 기간을 봤을 때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러니 공부 자체를 안 하고 며칠을 슬럼프에 빠졌다.
너무 우울해서 휴대폰을 살리고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들은 다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졸업하면 다 함께 모이기 힘들 것 같아서 안동으로 가는 기차를 탔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고 기분이 많이 풀렸다. 대화를 하다 보니 누구나 다 고민은 있었다. 취업을 못한 친구도 있고 부모님이 농사지으라고 한 친구도 있었고 심지어 다단계에 빠진 친구도 있었다. 친구들을 보기 전까지 이미 친구들보다 몇 년이 늦었다고 생각하며 우울했지만 (이미 졸업해서 취업한 친구들도 있었고, 3년제에서 나 혼자만 2학년이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열심히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집에 가면 다시 한번 공부를 다시 열심 이해서 어디든 인 서울 대학으로 편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내려가기 전에 학과 사무실에 들려 조교 샘에게 인사를 했다. 잘 지내시는지 물어보고 사무실을 둘러보는데 "전문대 글로벌 현장학습"이라는 포스터가 보였다. 대충 내용을 읽어보니 전문대생을 뽑아 세계 각지에 보내서 현지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를 시켜주고 회사에서 연계를 해서 인턴을 시켜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기억하기로는 한 학기(6개월) 과정이었고 전액 무료로 다녀올 수 있는 프로그램 이였다. 잘되면 현지 채용이 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학교는 학교는 나가지 않아도 학점을 졸업이 되는 시스템이었다.(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시험이나 과제를 온라인으로 제출했던 기억이 있다.)
지원자격은 당시에 토익 850점 혹은 토익스피킹이 몇 등급 돼야 가능하다고 적혀있었고 이후에는 서류(영문 자기소개서 등)와 영어면접을 본 후 선발된다고 적혀있었다.
지원금액은 최고 1500만 원 정도 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차상위계층이었기 때문에 지원금액이 조금 더 컸다.)
나는 편입을 떨어지더라도 영어 공부를 해두면 내년에 복학해서 이걸 도전하면 되니까 집에 가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몇 달간 알바와 영어공부 그리고 학점은행제를 병행하였고 편입시험을 몇 군데 보게 되었다. 원하던 곳은 떨어졌지만 붙은 곳도 한 군데 있었다. 하지만 그 학교를 다니는 것보다 해외 현장학습을 가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 다시 복학을 하였고 나는 다양한 동아리 활동과 함께 마지막 대학생활을 하였다.
그때부터는 쉬운 원서를 계속 구해서 읽었다. 빈 강의실에서 소리 내어 읽기를 최대한 했다.
그중 현대 영어로 다시 쓰인 오만과 편견은 30번도 넘게 읽은 것 같다. 아직도 챕터 6까지는 영어 문장이 거의 다 기억난다. 이때 남은 시간은 미드를 같이 봤고 리스닝 실력이 많이 늘었다.
그렇게 나는 곧 있을 전문대 글로벌 현장학습을 지원하기 위해 토익시험을 봤고 거기서 875점을 받고 지원자격을 충족시켰다.
네이버 카페(이재록교수의 제이잉글리시카페) 에 가입해서 교수님께 사정을 설명드리고 내가 쓴 자소서를 교수님에게 첨삭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이재록교수님이 글을 보실리는 없지만, 실제로 본적도 없는 저를 위해 아낌없이 격려해주시고 첨삭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
영어 면접은 학교에서 외국인 선생님을 모셔서 스터디그룹을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끝에 서류와 영어면접 모두 합격하였고 그렇게 나는 캐나다 밴쿠버로 갈 수 있었다.
-계속
편입은 정말 어려운 것 같던데... 캐나다 이야기도 계속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삶도 응원합니다.
알면서도 못하는게 대부분의 사람인데..
그 점에서 존경합니다.
말로만 영어해볼까하는 나는 뭔지ㅠㅠ
다음편도 빨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