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 총리 (우) 오른팔
영국내 코로나 사태 초기에 거론된 '집단면역론'은 논란의 대상이었습니다.
학계 전문가들은 '면역이 될 것이라고 낙관할만큼 우리는 코로나에 대해
충분히 알고 있지않다' '백신처럼 통제된 환경이 아니라면 수많은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고 과학자들은 연대 항의서한을 내는 등,
파문이 확산되었죠.
이에 보건부 장관은 '과학적인 개념일뿐이며 정부의 공식정책이 아니다'라며
진화작업에 들어갔습니다만...
이후에 흘러 나오는 얘기들을 보면 실제로 단순히 개념검토 정도에
머물렀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영국 타임스지는 초반에 뭉기적대던 보리스 존슨 내각이 왜 급거 U턴을
하게 되었는가를 여당 내부 소식통을 인용, 지난 22일 '영국을 뒤흔든
10여일(Ten days that shook Britain)'이라는 기사에서 설명하고 있는데요.
기사 일부를 발췌 해봤습니다.
..."지난 두 달간 영국 정부는 코로나에 대비할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보리스 존슨 총리는 국민들의 삶을 바꾸게될 단호한 조치들에
대해 본능적으로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한 보수당 중진의 회고
"코로나가 또 다른 인플루엔자에 불과하다는 논의만 많았을뿐이에요."
존슨 총리의 수석 보좌관인 도미닉 커밍스(Dominic Cummings)는
(의료계 최고 책임자) 크리스 위티 교수의 예측대로 인구 60-80%가
감염되고 집단면역이 발휘된다면 겨울쯤 닥치게될 코로나 바이러스의
제2파에는 영국이 더 잘 대응하게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2월말 개인 모임에 참석한 도미닉 커밍스는 좌중에게 코로나에 대한
정부 전략의 개요를 설명해줬다.
참석자의 전언을 빌자면 그 내용인즉슨...
1. 집단면역
2. 경제를 지켜라!
(주: 집단면역이 있으니까 경제에 직격탄이 될만한 조치들은 피한다.)
3. 그러다가 연금 수령자들이 죽는다면 어쩔 수 없지 뭐.
(herd immunity, protect the economy
and if that means some pensioners die, too bad)"
3월 12일 목요일.
임페리얼 칼리지 의대 연구팀이 제출한 모델링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검토하기 위해 각계의 학자, 전문가들로 구성된 전략 자문단 회의(SAGE)가 열렸다.
주: SAGE (strategic advisory group of experts)
결론은 충격적이었다.
한 주 전만 하더라도 영국 정부는 각 지자체에 코로나 사태로 인한
사망자 10만명에 대비하라는 경고를 은밀히 내려보냈다.
(보고서를 본) 의료 총책임자 크리스 위티 교수와 수석 과학자문관 패트릭 발란스경은
수치를 잘못 짐작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참석자의 말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51만명이 죽고,
완화전략을 취하더라도 25만명이 죽게될 거라고 합디다."
다른 이의 전언.
"과학과 현실이 충돌하는 현장이었어요."
회의는 개종의 순간이었다.
재앙으로 치닫고 있는 일련의 과정수립에 일조를 했던 커밍스도 마음을 고쳐 먹었다.
이때까지 하더라도 영국내 확진자 수는 유럽의 평균수치 이하였지만
이제 평균치 위로 올라섰고, 암울한 상황이던 이탈리아가 겪었던 코스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한 장관의 말.
"이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지켜 보는 것도
정부 각계에 전기충격과도 같은 힘을 발휘했습니다."
다음 날인 13일 금요일.
커밍스는 강력한 조치를 취해야한다면서 가장 목청을 돋우는 강경파가 되었다.
여당 중진의 말
"도미닉은 스스로 개종했어요.
집단면역론과 '노친네들은 죽게 냅두라'던 그가
이제는 지역과 경제를 셧다운시켜야한다라고 바뀐 겁니다."
(He’s gone from ‘herd immunity and let the old people die’,
to ‘let’s shut down the country and the economy.’”)
...(중략)
출처: 타임스(20-03-22)
"Coronavirus: ten days that shook Britain"
촌평)
1. 영국이 '갈짓자 행보'를 걷게된 내막을 짐작하게 만드는 기사입니다.
이후 영국 정부는 대응단계를 격상시키고 봉쇄령과 전국 휴교령 같은
조치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2. 매일 총리 곁에 머물던 수석 보좌관 도미닉 커밍스는
확진판정을 받은 주군을 따라서 코로나 감염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현재 자가격리중입니다.
그는 브렉시트 캠페인을 막후에서 고안하고 추진했던 배후 이론가였으며
보수당내에서도 끊임없이 갈라치기를 일삼는다고 해서 '분열자의 분열자
(disruptor's disruptor)'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참고) 도미닉 커밍스: 수상관저의 최고 분열자 (AFP)
https://www.france24.com/en/20190903-dominic-cummings-downing-street-s-disruptor-in-chief
드라마 '브렉시트' 예고편
(1분 30초부터)
작년에 브렉시트를 다룬 다큐 드라마에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인공인 커밍스 역할을 맡기도 했습니다.
아주 '대단한 인물'이었네요. ~ㅎ
3.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 기사가 나가자 존슨 내각은 타임스지가
'명예훼손급 날조기사'를 썼다고 펄펄 뛰는 중입니다.
(타임스는 보리스 존슨도 기자생활을 했었던 보수성향 매체입니다.)
4. 초유의 사태를 본토에서 체험하는 미국-영국 모두 다 우왕좌왕 합니다.
코로나가 본격 시작되기도 전부터 방역에 대해 '명료한 사전구상과 대비'를
하고 있었던 우리 정부에게 지금도 세계언론들이 찬사를 보내면서
자국정부 비판에 끊임없이 거론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물론 중국이 속인건 맞는데 지들도 중국이 뻥치는거 알고 있었으면서...
사망자 늘어나면 집단면역? 이런 소리 못하는게 현실이죠.
쌤통.
이제 아베가 걸릴 차례...
더 재밌는건 그런 커밍스의 기획으로 작년 총선에서 토리당이 랜드슬라이드를 가져갔다는거겠죠. 노동당의 실책도 있었지만, 노동당 지지구역을 돌아서게 만든건 그의 공이 아주 컸다고 생각들구요. 때문에 정부에 비판적인 여론은 그들을 안좋게 바라볼 수 밖에 없다고 보네요.
보리스 존슨도 마찬가지로 외모나 행동은 트럼프와 비슷하지만, 정치자체는 트럼프와는 달리 굉장히 잔인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긴합니다. 트럼프는 언론이나 민주당을 찍어누르지도 않았고, 내각인사는 자주 자르긴하지만 나가고 나서도 연락하는 사람이 있다는 반면, 존슨은 No 10안에서 커밍스에 반대하는 장관을 자르는 일도 했으니까요.
결국 이번 사태로인해 여러 국가의 정치지형이 바뀔거라고 생각은 드는데, 일단 우리나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말을 아끼고 있고....무엇보다도 여긴 코빈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기에 작년 영국총선에 대한 글을 쓰기엔 거북한 내용들이 많을거 같아 말을 아끼는 중이기도 하네요.
전혀 거북하지 않아요.
기회가 되실 때 글 부탁드리겠습니다.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