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우연찮게 추운나라 를 갔는데 왜 이렇게 춥지 했었어요 호텔 바닥은 먼지투성이 일거 같은 카페트에 건조하고 무엇보다 히터가 따뜻한 기운이 아니더라구요
침대에서 자도 그 포근하고 나오기 싫은 그 느낌이 아니니.
그 나라에서 오자마자 그냥 방바닥에 보일러 올려놓고 이불 뒤집어 쓰니 . 이게 정말 찐이구나 싶었어요
거기에 부억에서 끓이는 된장찌개 냄새까지 나면.
근데 알고 보니 바닥에 보온을 하는 나라는 전세계 우리나라밖에 없더군요 .
그냥 보일러도 이렇게 좋은데 아궁이에 직접 불을 때는 진짜 온돌 황토방 얼마나 좋을지 궁금해집니다.
대부분 잔디 아니면 아스팔트고. 흙바닥이 별로 없어요. 신발에 뭐가 많이 묻지를 않아요.
제가 별로 사람들을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미국에서 어학연수 하면서, 한국에서 국제학교에서 일하면서, 몇몇 사귀면서 만난 모든 백인들은 입구에서 신발을 철저하게 벗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집에서 신발을 신더라도, 침대에서 잘때는 벗고 올라가고요.
밖에서 신던 신발은 벗고 실내화를 싣는 경우가 꽤 많고,
한국처럼 집에서 신발을 아예 벗고 생활하는 경우도 꽤 많아요.
거기에 목화솜 이불 덮고 누워서 땀빼면 웬만한 감기는 그냥 떨어집니다
진짜 세계 최고의 문화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군불 때면서 고구마, 밤도 구워먹고 그랬었죠 크...
/Vollago
그리고 한국형 보일러가 들어간 아파트들을 세계적으로 보급하고 있고 일반 바닥 위에 시공하는 모둘형 보일러도 제법 팔리고있는것 같더군요.
이른 바 "붉은산"이라고 부르게 된 원흉입니다.
그건 서양도 마찬가지 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서양도 도시 주변은 죄 민둥산이었어요. 이들도 나무로 땔감을 썼기는 마찬가지니까요.
우리보다 일찍 화석연료가 보급되고 조림사업을 해서 상황을 바꾼거죠.
벽난로냐, 아궁이냐 차이일뿐입니다.
그때가 소빙하기였다는 얘기가 있더라구요.. 나무가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온돌이 없었으면 북쪽은 우리나라가 아니었을거 같아요..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708141252001
벌채 피해조사 겨우 제작년에 시작했네요.
할머니집이 그런 집이었는데 지금은 공사해서 보일러로 바꿨어요.
물론 이 분이 영감을 얻은 것이 한겨울에도 따뜻한 경복국 자선당 건물이라는 점에선 자랑거리입니다. 이 에피소드에서 안타까운 건 이분이 저 건물에 들어간건 조선 땅이 아니라 일본 땅에서였다는 점 이고요. 고작 일본 귀족이 경복궁의 건물을 통째로 뜯어 갔던 그 당시의 상황을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타까워요.ㅜㅠ
뭐 영감은 우리나렝서 받아갔더라도 말이죠
온수바닥난방은 시공이나 정비도 까다롭고 비용이 많이 들며, 바닥에 축열/방열이 되는 과정에 시간차가 있기 때문에 쾌적한 온도로 유지하기가 힘들고, 에너지 효율도 낮습니다.
우리나라도 집들이 자꾸 커지고 층고도 높아져서...창문마다 아래에 촘촘하게 설치된 라디에이터가 효율적일 경우가 많지요.
요즘 같은 시대에 더 추운 나라 사람들이 바보라서 안쓰는게 아니에요. 장점이 엄청나면 벌써 도입해서 쓰고 있겠지요.
방은 우풍 겁나쌔서 코시리고 이불안은 불지옥.
그나마도 아랫목 윗목이라고 했는데 윗목은 냉탕이었죠. 아랫목도 바짝 아궁이쪽 붙으면 화상입을 정도였던거 같아요.
이불 밖과 안의 온도차가 진짜 어마어마했던듯.
그 물 순환해서 데피는 방식이 되고 나서야 지금의 온돌이 된거 같아요. ㅎㅎ
notion이라는 성공한 스타트업 회사에서 신발벗고 들어가는 오피스에도 사용되구요.. floor heating 검색해보시면.. heated floor 검색해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인건비가 비싼 해외에서는 부자들 말고는 잘 못쓴다 합니다.
뜯어내고 새로 올리기 전에는 온돌이나 바닥보일러 안썼나요.
그리고 우리나라 인건비 싼것도 사실 아닌가요?
옛날 집들 보면 아랫목 주변 장판이 새까맣게 타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거 생각하고 지지면 뭔가 찝찝...
우리나라 산들이헐벗고, 민가가 납작해지고 작아진 이유이기도 하고요. 현대에 와서야 단열재가 좋아지고 한국처럼 아파트가 주된 거주형태가 되어서야 온돌이 우수하네 어쩌네 하지만 온돌이 민간에 대 유행이 된건 17세기 이후입니다. 그리고 당시에도 양반들 중에는 사람을 게으르게 만든다고 맹 비난을 하던것이 온돌 유행하면서 민간인들이 야신의 낙엽 솔방울, 나무들을 싹싹 긁어 태우는 바람에 산불이 줄어 그 이후에 양반들도 장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100년만에 산들이 헐벗어 조선은 망할때까지 고질적인 땔감난을 겪었죠
아직도 시골 단독주택에는 온돌바닥만으로는 난방이 감당이 안되어 보통 집집마다 전기 히터나, 페렛, 장작 페치카를 병용하고 연탄난방이 시골에서 아직도 행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마냥 찬양하기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