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씨를 처음 보았던 건 어느 삼겹살집이었습니다.
당시 젊은농부라는 이름으로 썼던 ‘농사이야기’라는 글이 딴지 대문에 연재되기 시작한 인연으로 딴지 필진 연말모임에 참석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김어준씨를 처음 만나보게 되었지요. 삽겹살 파티를 안내하던 초대장에 적혀있던 문구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납니다.
'이번엔 총수도 나옴'
그동안 그런 자리에 잘 참석하지 않아왔음이 느껴지는 저 문구.
김어준씨를 정말 좋아하던 친구와 함께 참석해도 괜찮겠느냐는 물음에 흔쾌히 허락을 받고 남산자락에 있는 작은 식당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의 첫인상은 ‘여기 끌려나온 것이 분명하다’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워낙 인기스타여서 많은 이들이 총수에게 인사를 건네는 탓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바빠 보일 정도였던 기억이 납니다. 그 날의 자리는 참 시끌벅적 했습니다. 각 분야에 많은 글들을 써오신 분들의 술자리는 정말 시끌벅적하고 변화무쌍했습니다. 재밌더군요. 다만 총수만은 별 이야기가 없었습니다. 그 좋아한다는 고기도 안 먹고. 나중에 제 벗이 곁에 앉아 한참을 이야기 나누고 있기에 집에 돌아오며 무슨 이야기했냐고 물었더니 여행이야기 나누었다고 한 기억도 납니다. 그 후에는 본 적이 없으니 첫인상이 그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의 전부였습니다.
유명인을 바라보는 예의 그 호기심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김어준씨에 대한 저의 인상은 그저 재밌는 사람이란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이전에 ‘글’로 만났던 김어준씨에 대한 첫인상은 굉장히 무거운 무게를 갖고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오랜만에 ‘탄복’했었던 기억이 여전히 생생할 정도니까 말이지요.
2009년인가 우연히 김어준씨가 쓴 ‘DJ가 옳았다’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그 글을 읽고 그 글을 좋아하게 되었고, 그 글을 배우고 싶어 프린트해서 가방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꺼내 읽을 정도로 제게는 좋은 글이었습니다. 무엇이 좋았냐면... 작은 그림들을 모아 큰 그림을 맞추고 추론하는 시선의 방식이 좋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능력이 좋았습니다. 저는 늘 딴지일보의 너부리 편집장의 글을 제일 좋아해왔지만, ‘DJ가 옳았다’ 만큼은 그에 못지않게 제게 많은 영향을 끼친 글이었습니다. 두 분의 글 덕분에 글쓰는 재미란 것을 배웠고, 그 덕분에 처음으로 누군가가 보게 될 공간에 글이란 것도 써보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용기를 짜내어 가장 먼저 딴지에 글을 연재 해봤고 그 인연으로 그 좋아하던 너부리 편집장과 김어준씨를 만나게 되는 고마운 기회도 갖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나꼼수를 많이 듣지 않았습니다. 딱히 좋거나 싫거나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게 아니라 팟캐스트라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지요. 다만 늘 응원하고 있었습니다. 정말 필요한 일인 동시에 정말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늘 마음으로나마 응원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명박씨가 소환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괜스레 찡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명박씨와 박근혜씨가 대통령 자리에 있을 때 딴지필진들이 비판적인 정치 관련 글을 쓸 때면 곧잘 하던 말이 “잡혀 갈 땐 나 혼자 잡혀가진 않을 거야!”라는 농담 같지 않은 농담이었습니다. 그 무렵... 그 모든 조그마해서 부끄러울 지경일 소심함들을, 두려움들을 위한 든든한 몸빵이 바로 김어준씨였습니다. 나중엔 그의 곁에 주진우, 정봉주, 김용민 등의 동료 몸빵들이 생겨 참으로 보기에 좋았습니다. 그분들은 서로의 덕에 덜 외로웠을테고 많은 의지가 되었을테니까 말이지요. 그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괜스레 찡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 역할 없던 제 마음도 이런데... 오늘의 그는 얼마나 많은 감정들과 조우하고 있을까...
김어준씨에게 고마운 마음이 드는 오늘입니다. 주진우씨를 포함해 고생해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마찬가지로 고마운 마음이 드는 날입니다.
결국 올 것 같지 않던 그 날이 온 지금, 문득 지난 날 지니고 아껴 읽던 그의 글이 떠오른 이유는 아마도 이 이야기가 입가에 맴돌아서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일은...
‘김어준이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