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주제는 민주주의가 태생적으로 가질 수 밖에 없는 문제들입니다. 부정부패는 사실 귀족정이든 민주정이든 똑같이 발생할 수 있는 패악이지만, 그 양상은 양자간에 매우 다르게 나타납니다. 귀족정에서 공직자들은 이미 부자들이기때문에 부정부패를 저지를 가능성은 적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동료들을 매수해야 하니 이 과정에서 부정행위가 발생하게 됩니다. 반대로 민주정에서는 가난한 사람이 공직에 오르므로 자신의 지위를 남용하여 부정축재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지만, 그 공직에 오르는 과정에서 참정권자들인 다수의 국민들을 모두 매수하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토크빌 선생의 말씀이 무색하게, 현실에서는 가진 놈들이 더 심하게 해먹는 케이스도 비일비재한듯 합니다.) 민주주의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는 또다른 심각한 문제들을 낳습니다. 이는 국가 재산을 도둑질하는 이들의 성공모델(?)을 따르려는 수많은 모방자들을 양산하는 것입니다. 민주정하에서 출세하는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시기심 또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출세하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싶어하며, 이들이 성공한 것은 온갖 부정한 방법을 써서 가능했다고 이들을 매도하기 마련입니다. 이는 나쁜 놈이라야 성공한다는, 정치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확산시킬 수 있습니다. (정치 혐오를 유발한다는 말씀이신듯)
민주주의 체제의 또다른 문제는 위기에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미국 민주정은 독립전쟁 외에는 별다른 위기를 겪지 않았지만 독립전쟁 기간에도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출하였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전쟁이 길어지자 징병과 세금납부를 거부하는 풍조가 더욱 거세졌다는 것입니다. 사실 미국은 육군이든 해군이든 징병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기때문에 프랑스처럼 오랜 기간동안 전쟁을 수행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기도 합니다. 민주정에서는 잠깐이야 애국심이 들불처럼 일어나 전쟁을 할 수 있지만, 전쟁이 오래가게 되면 국민들은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현재의 고통을 면하기 위해 미래의 더 큰 피해를 감수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기에 약한 민주정의 특성은 왜 유럽에서 민주주의 국가가 나오기 힘든지를 설명해주기도 합니다. 민주정은 평화기에는 좋은 체제이지만 위기에 약하기때문에 주변의 귀족정이나 절대왕정 국가들과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하여 토크빌은 민주정 안에 귀족정적인 요소가 있어야 민주정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제언합니다.
민중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민주주의의 태생적인 약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장기적 견지에서 볼때 바람직하지만 단기적으로는 힘들게 하는 정책에 민중들은 좀처럼 찬성하려 하지 않습니다. 일례로 미국에서는 부정 파산을 금하는 법률이 제정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 법이 제정되면 다른 사람의 파산 사기로 인하여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줄어들기때문에 당연히 제정되는 것이 맞았지만, 당시 미국인들은 자기가 부정파산죄로 걸려들까봐 좋은 게 좋다고(?) 이 법의 제정을 극구 반대했다고 합니다. (경우는 다르지만 주식 공매도 재개에 극렬히 반대하는 우리나라 투자자들이나, 이들 눈치 보느라고 공매도 재개를 미루는 정부의 행태가 오버랩됩니다.) 또다른 예로 토크빌은 술에 대한 세금 부과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려줍니다. 당시 대부분의 범죄의 원인이 싸구려 독주라고 미국인들은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러한 사회악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 독주에 고율의 세금을 매기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만, 주정뱅이들이 다수고 맨정신들이 소수에 불과한 현실에서 세금을 매겼다가는 바로 혁명이 일어나거나 그런 법안을 발의한 의원의 당선은 물건너가는 것이었기에 이 문제는 방치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총기규제법이 통과 안되는 것 역시 이런 사례인 듯) 물론 민주정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경험이 쌓이면 이러한 문제들을 차차 해결해 나가겠지만, 문제는 시간입니다. 게다가 인디언들이나 남아메리카 신생국민들처럼 교육 수준이 낮고 충분한 교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무지한 사람들에겐 민주주의는 혼란만 유발할 뿐이니 전제정으로 가야한다며 토크빌은 악담을 퍼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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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국민들의 수준을 따라간다는 말씀인데 한편으로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좀 재수없긴 하네요
우리나라에는... 뭐가 있을까요?
로마제국의 원로원은 그 자체가 귀족이었고, 미국의 상원은 귀족은 아니지만 소수 엘리트 그룹 성격이 있어 보입니다.
비교적 임기가 길어 그만큼 민중의 변덕에 덜 휘둘리는 상원이 대외 조약의 비준과 같은 외교 업무를 대통령과 함께 수행하는 것이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상원 역할은 법사위가 하는 듯한데... 미국 상원의 다양한 역할(공직자 인선에 대한 추인, 조약 비준)에는 아무래도 못미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