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에 대한 논쟁은 거의 서양철학사와 같이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오래된 논쟁이죠
저는 거의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21세기 현재에도 자유의지에 대한 온갖 종류의 논변들이 있는 걸로 압니다
(저의 지식은 70년대의 해리 프랑크푸르트의 논변을 끝으로 거의 멈췄습니다..)
19세기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도 자유의지에 대해 최소 두 저작에서 말을 했는데요
이번엔 그 중 하나인 '결정론의 딜레마(The Dilemma of Determinism)'에 대해 간단하게 요약해보겠습니다
1.
일단 배경부터 짚고 넘어가죠
비록 현대에 와서는 결정론이 과학적 결정론 (인간의 모든 행동은 자연과학적으로 완벽한 인과관계를 통해 설명가능하다..언젠가는..)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기독교 세계관이 강력했던 서구권에서 결정론은 보통 전지전능한 신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어있다는 결정론을 의미했죠
제임스가 얘기하는 결정론도 이런 종교적 결정론입니다
과학적 결정론으로 넘어온 뒤로 우리는 자유의지라는 말이 무척 긍정적으로 느껴지고, 마치 인간성의 최후보루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종교적 결정론일 때에는 약간 다릅니다
간단히 생각하면, 전지전능전선한 신이 만든 질서에 따라 모든 게 결정되어있다면, 인간에게는 결정된 대로 살아가는게 가장 이상적인 삶일테니까요
따라서, 결정론과 반대되는 자유의지론은 자유보단 오히려 무질서, 혼란, 방종, 비이성성 같은 걸 의미하곤 했습니다
(모든 자유의지론이 이런 건 아닙니다 오히려 밑에 언급할 홉스가 유별나다고 볼 수도 있지 않나 싶네요 사실 제가 전공자가 아니라서..)
가령 홉스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죠
소극적 자유론으로 분류되는 홉스의 자유론의 핵심은 법이 끝나는 곳에서 자유가 존재한다는 거죠
신의 섭리 같은 것도 그런 종류의 '법'이라고 본다면, 신의 섭리가 없는 곳에서 자유가 존재하겠죠
하지만 온갖 좋은 것은 다 신의 섭리쪽에 들어가있기 때문에, 그것이 결여된 자유는 단지 부정적인 것만 갖게 된 상태겠죠
그래서 제 기억이 맞다면 대략 이런 말을 합니다
'자유의지는 원인이 없이 결과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자유는 질서의 파괴, 그리고 그에 따른 혼란 또는 비이성이라는거죠
2.
제임스로 돌아와보죠
제임스는 위와 같은 종교적 결정론이 딜레마에 빠져있다고 합니다
딜레마의 두 뿔은 각각 염세주의와 주관주의라고 하고요
2.1. 염세주의
만약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전지전능전선한 신의 창조물이라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도덕적 악의 문제들을 어떻게 다뤄야할지 난감해지죠
(제 기억엔 어거스틴인가 적어도 그 사람 때부터 전해져내려오는 문제인 걸로..)
역사적으로도 여러가지 대답이 있긴 했습니다
가령 라이프니츠 같은 경우엔 현존하는 악의 문제를 대략 이런 식으로 대답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 세계가 가능한 모든 세계 중에서 최선이다'
간단히 말해, 악은 필수악이라는 거죠
이걸 없애면 다른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등등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신이 봤을 때 최선의 세계를 만들어놓은 게 우리가 사는 세계다 뭐 이런 식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제임스가 볼 때 결정론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도덕적 후회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안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게 그렇게 되면 안됐는데', '안타깝다', '앞으로 그런 일이 없게 해야겠다' 같은 식의 후회를 하죠
만약 결정론이 옳다면, 이런 도덕적 후회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잘못된 태도죠
모든 도덕적 악은 세계의 필수적인 부분이기에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세계를 전지전능전선한 신이 만들었다면, 우리가 보기에 도덕적 악에 불과한 것들도 분명 신의 관점에서는 좋은 것일 테니까요
아무런 의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런 무의미성을 감수하고서라도 도덕적 후회를 한다면 그건 단지 틀린 판단에 불과하다는거죠
결국 이런 상황 속에서 인간은 세상에 대한 회의, 염세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거죠
어차피 그렇게 될 거였다, 어쩔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신을 탓해라 등등 이런거죠
2.2 주관주의
염세주의에 빠진 사람이 할 수 있는 발악(?)은 바로 주관주의입니다
세상이 어찌됐든 내 마음대로 세상을 이해하겠다 이런거요
나름 합리적이지만, 이것도 결국은 타조가 땅속에 머리 박는 상황이랑 다를 게 없죠
결정론과 무관한 주관주의라면 모를까, 결정론이 옳다는 걸 받아들인 상태에서 주관주의로 빠진다면, 이건 눈앞의 명백한 진리를 놓고 (필연적인 악 같은 것) 그걸 받아들이기보단 자기 마음대로 하겠다는거니까요
제임스가 볼 때, 이런 주관주의의 특징은 바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겁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알자 이런 게 아니라, 느끼는 대로 행동한다는거죠
어차피 객관적인 세계에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없으므로, 단지 자기 내부의 감정을 동력으로 삼아서 자기마음대로 산다는거죠
결국 이런 사람들은 마치 '감정에 의한 결정론'처럼 자신의 감정이나 느낌이 만들어내는 관성에 굴러갈 뿐이기에 그또한 바람직한 삶의 모습이 아니죠
3.
그럼 제임스의 대답은 뭐냐
일단 본인은 자신의 입장이 비결정론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결정론이 섞인 비결정론이죠
간단히 말하면, 과거에 이미 발생한 일은 절대로 바꿀 수 없는 세계의 필연적인 부분이다
하지만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일은 순수한 우연(chance)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우연적 부분이다
과거는 결정론적, 미래는 비결정론적으로 구분한거죠
그럼 현재에 사는 인간은 무엇이냐
인간은 비결정적인 미래에 대한 의지(indeterminate future volition)를 갖고 사는 존재라는 거죠
결정론의 문제는 결정론을 믿는 자는 아무리 봐도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인생을 못산다는 거였죠 (캘비니즘 같은 걸 생각하면 예외도 있겠지만요)
그리고 비결정론의 문제는 인간의 행위를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에 (이성적 질서가 부재한 상태니까), 단지 혼란만이 있을 뿐이라는거였죠
제임스는 여기서 과거에 발생한 일은 세계의 필연적인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니체 영원회귀설과 비슷해보이죠)
이런 식으로 결정론의 일부를 긍정합니다
동시에 '우연'이란 단순히 비이성적이거나 혼란스러운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봄으로써 비결정론도 긍정합니다
제임스에게 결정론과 비결정론의 문제는 세계를 완벽하게 짜여진 하나의 통일(unity)로 볼 건지 (완벽한 인과관계처럼), 아니면 각 부분들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인간이 그 사이에 개입할 여지가 있는지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세계의 느슨한 연결을 보여주는 게 바로 '우연'의 존재라는 겁니다
우연이란 세계의 비결정성을 나타내는 형이상학적 개념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결정되어있지 않고, 그것을 어떤 것으로 결정할 지는 인간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거죠
여기서 비결정론의 도덕적 함축을 볼 수 있죠
제임스에게 '우연'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염세주의, 막연한 주관주의, 그리고 혼란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완벽하게 결정되어 있는 과거 위에 서서 순수한 가능성이 존재하는 미래에 대해 주체적인 선택을 내림으로써 일종의 도덕적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겁니다
(필연적으로 결정된 과거가 갖는 의미는, 가령 역사 같은 걸 생각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역사에 대해 단순히 '그게 그렇게 되면 안됐어' 같은 태도를 갖는 것보다, 역사가 우리의 미래 선택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생각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보죠.)
4.
그럼 자연스러운 반응은 이거겠죠
전지전능한 신에게도 우연이 존재하느냐?
서양철학전통에서 본다면, 우연 또는 가능한 것으로만 존재하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보다 존재론적으로 열등합니다
신은 완벽한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열등한 것을 가질 수 없죠
따라서 신과 우연은 같이 가기 힘든 개념들이죠
제임스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신에게도 미래는 순수한 가능성으로 존재한다는거죠
하지만 인간과 차이점이 있죠
인간은 자신이 미래에 어떤 선택을 내릴지 모르고, 그 미래의 선택 다음의 미래의 선택으로 뭘 내릴지도 모르죠
반면 신은 자신이 미래에 어떤 선택을 할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일종의 모든 미래 시나리오를 다 알고 있는거죠
완벽한 체스플레이어와 비교해보죠
그는 모든 기보를 꿰고 있기 때문에, 각 수에 따라 무슨 선택을 내릴지 다 알고 있지만 아직 그 수를 내리지 않은 것일 뿐이죠
신도 그런 상태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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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커피 마시면서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글을 마무리할 무렵에 할 일이 생겨서 후반부가 많이 좀 불명료하네요..
그래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는데에 어려움은 없으실거라 믿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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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신 분들 또는 위키보다는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보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윌리엄 제임스
윤리학: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5325722CLIEN
믿으려는 의지:
https://www.clien.net/service/board/lecture/15415994CLIEN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있는 것:
그런데, 특히 칼빈의 영향을 받은 교회에서는 이중결정론이란 것을 믿고 있죠. 구원받을 사람은 어떻게든 구원받게된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이란 사람의 행위에 대한 댓가가 아니라 온전히 신의 선택인 것이고 신은 전지전능하므로 이미 어떤 사람이 나기 전부터 그 사람의 운명을 알 수 있다, 다른 말로 정해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나쁜 일을 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받을 운명이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적일텐데... 반대로 그 사람은 구원받을 사람이므로 그 사람의 행동이 나쁘지 않거나 잠시 악마의 꾐에 빠졌지만 구원으로 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옳은 사람은 옳은 일을 합니다.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옳은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은 옳은 사람이 아니라고 볼 수 있고요. 그런데, 옳은 사람이 나쁜 일을 한다면 그 일이 나쁜 일이 아니라 옳은 일이거나 상황이 좋지 못하게 흘러간 것으로 생각하고... 그 사람의 책임을 부인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신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이런 방식으로 유신론자가 나쁜 일을 합니다. 이건 주관주의적 태도일 것 같고요.
이런 것이 결정론이 옳다는 것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눈 앞의 명백한 잘못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 아닌가 싶네요. 필연적인 악 까지 가지 않더라도요.
세계의 구성과 존재는 결국 생명체의 관점에서 결정된다는 내용이었는데, 일견 유사한 설명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슷한 관점이네요.
요새 많이 이야기되는 양자역학적 관점에서 보면 비결정론이 우세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이런건 정말 똑똑하신 분들이 정리해주지 않으실까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