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G80-3000 수리에 이어서, 이번에는 모델 M 스페이스 세이버 수리에 관한 기록입니다.
모델 M은 제가 참 좋아하는 키보드입니다.
왜 좋아하는가하면 역시 고전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IBM은 이제 일반 사용자와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어져 버렸고, 조금의 흔적만이 씽크패드에 남아 있을 뿐입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IBM 키보드의 원점은 모델 F 5150이나 5170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델 M이 현행 레이아웃의 모태라는 점이야 말로, 이것이 오늘날까지 실사 가능한 골동품으로서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모델 M에 관심을 가진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었습니다.
정말 몰입해서 수집하고 비교 분석해 보면서 나름의 기준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옛 글을 찾아보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면서, 어찌보면 쓸데없는 일 참 열심히 했구나라는 생각도 듭니다.
가장 좋아했던 물건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풀배열인 1390120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스페이스세이버 1391472입니다.
하지만 학생이라 주머니가 가벼웠던 시절, 모은 물건들을 그대로 소장하기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다른 물건을 들이기 위해서는 처분할 수 밖에 없었지요.
실사를 위한 키보드 취향이 확고해지고, 용돈도 좀 쓸 수 있겠다 싶은 시점이 되었을 때, 좋은 매물을 찾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중고장터에서 물건 하나를 만나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91년산 1392934입니다.
물건을 받았을 당시에는 그 기쁨에 무척 흥분했었지만, 이것은 이내 창고에 처박히게 됩니다.
스프링과 접점에 이상이 있어 키 입력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9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옛 물건들을 정리하다 이것이 튀어나왔고, 마음 한 쪽에 짐처럼 남겨져있던 이 숙원사업을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모델 M은 본래 구조적으로 분해 후 재조립이 불가능합니다.
버클링이라는 구조를 만들어 내기 위한 하우징 구성이 특이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상부 하우징과 하부 하우징을 플라스틱 바를 녹여서 체결했다는 점입니다.
요컨데, 재조립을 위해서는 별도의 재료로 가공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제 스스로는 이런 작업을 할 수 없기에 키보드공장장님께 수리 의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키보드공장장님이 보내주신 사진으로 본 키보드의 상태는 처참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과거 사용자의 탓인지, 아니면 과거 부주의한 배송 탓인지 모르겠지만 플라스틱 걸쇄들이 부서져 있습니다.
우측 상부 하우징이 쪼개져 있습니다. 이녀석은 과연 어떤 삶을 살아왔던 것일까요....
문제의 접점부과 스프링입니다.접점부는 둘째치고 스프링 상태가 말이 아닙니다....
사진을 보니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이게 과연 수리가 될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수리를 해 주시더군요.
그리고 지금 제 앞에 와서 정상적으로, 좋은 키감으로 작동을 하고 있습니다.
새 물건을 살 수 밖에 없을 때가 있고, 옛 물건을 고칠 수 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이 물건, 모델 M 스페이스 세이버는 확실히 후자였습니다.
1991년, DOS 시절에 만들어진 물건을 2022년 윈도우 10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기쁨을 느낍니다.
성시훈님 네임드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