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살다가 대구로 왔습니다. 빌라/원룸 형태의 집을 구하러 부동산과 같이 다니는데, 서울에서는 못 본 대구의 특징이 있었습니다. 빌라 건물마다 주인들이 직접 세 놓는다고 광고를 붙여 놓은 겁니다. 종이로 붙인 건물도 있고, 아예 철제 간판으로 붙인 건물도 있는데, 철제 간판의 경우 "훼손시 법적 처벌함!" 이렇게 추기(追記)가 되어 있는 겁니다. 저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같이 있는 부동산 직원한테 물어 보니 대답을 얼버무리는 겁니다.
그래서 뭐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는데, 이제 다시 집을 구하러 다닐 때가 되어서, 빌라 말고 주택 좀 구하려고, 근처 동네 다른 부동산을 갔는데, 소개해 준 집들 몇 개가, 자세히 보니 전부 대문이나 앞 전봇대에 주인이 월세 놓는다고 전화 번호 적어 놓은 집들이더라고요. 혹시 이거 부동산도 그냥 차 타고 다니면서 저 광고 보고 매물 적어 놓은 후 다시 제게 되파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쨌든, 소개해 준 주택들이 전부 낡고 후줄근한 집이어서, 마음에 안 들어 다시 돌아 다녀 봤는데, 좀 깨끗하고 좋아 보이는 이층 단독 주택들도 꽤 보이는데 그런 집은 세 놓는다는 광고 붙은 곳이 없어, 저런 집은 그냥 주인 자기가 살려고 지은 것이라 세가 없나 보다 생각하며 그냥 돌아오려는 찰나, 저녁 7시 경, 어둑어둑한 빌라 밀집가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어떤 남자가 자가용 차를 타고 다니면서 내려서 빌라 벽 위에 붙은 방 놓는다는 종이를 뜯어 내는 겁니다. 처음에는 혹시 구청 직원인가 싶었는데, 구청 직원이 밤 7시에 혼자 저런 일을 할 것 같지도 않고, 전봇대도 아니고 빌라 주인이 자기 빌라에 붙인 종이 광고를 떼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 빌라 주인과 세입자의 직거래를 막아서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이렇게 생각해 보니, 부동산 업자들밖에 없을 것 같더군요.
그 남자는 차를 타고 이동해서 두 채 너머에 있는 빌라에 가서는 준비해 온 유리창 닦개 같은 막대기를 꺼내어 손이 안 닿는 높은 곳에 붙은 방 있다는 광고지를 또 뜯어 내더라고요. 그리고는 다른 종이 광고를 빌라 벽에다가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아까 뗀, (1)다른 빌라 건물에 붙어 있던 광고지를 거기다가 붙이거나, (2)가짜 전화 번호가 달린 광고지를 붙이거나 , (3)부동산 전화 번호가 있는 광고지를 붙이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1)의 경우라면, 집을 구하는 사람이 A 빌라 건물 앞에 와서 저 광고지를 보고 "혹시 A 빌라 주인이십니까?" 이렇게 물으면, 상대방은 B 빌라 주인이니까 "아닌데요?"라고 할 것이고, 둘의 직거래를 막는 효과가 있겠지요.
*(2)의 경우라면, 전화를 안 받거나 엉뚱한 사람이 받을 테니, 역시 직거래가 안 될 테고,
*(3)의 경우라면, 부동산이 받아서, 마치 자기네 매물인 것처럼 하며, 중개 수수료를 받을 수 있겠습니다.
게다가 세 경우 중 어떤 경우가 됐든, 어차피 A4지에 쓴 모양은 다 비슷비슷한 것이라서, 빌라 주인이 그 광고지를 자세히 다시 보지 않으면 가짜 광고인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자기가 붙인 광고가 그대로 잘 있구나 생각하며 그냥 그대로 둘 가능성이 있겠군요. 아예 그냥 떼어 내 버리면, 빌라 주인이 그 상황을 눈치 채고 새로 광고지를 붙일 테니까요.
자, 어쨌든, 오늘 본 광경으로 빌라 주인의 직거래 광고판에 "훼손시 법적 처벌함!"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는 이유 자체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훼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말 부동산이 맞나요? 부동산이 맞다면, 저렇게 빌라 주인이 자기 빌라에 붙인 광고를 마음대로 뜯고 가짜 광고지를 붙여도 되는 건지? 그리고 차에 타고 이동하면서 도구까지 들고 저렇게 제거를 하고, 주인들은 훼손하지 말라고 저렇게 쓰고 있는 것은, 부동산과 빌라 주인들 간의 대규모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혹시 제가 상황을 오해했다면, 제가 본 상황은 뭔가요?
사진: 다음 지도 로드뷰에서 대강 찾은, 위와 같은 직거래 광고. 이 지역에서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으며, 아래의 사진의 것에는 "파손 시 추적하여 형사적 책임 묻겠음"이라고 적혀 있음.
PS: 타 도시에서 대구로 이사 오면서 빌라/원룸 구하시려는 분들은 괜히 부동산 갈 필요 없이, 어차피 빌라 모여 있는 곳 가서 대략 외관과 위치 보고 마음에 드는 빌라 앞에서 그냥 저런 광고 보고 연락해서 직거래하시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보증금도 얼마 안 되어서...
주인인척 하면서 적어서 붙이는 경우도 많습니다..
대구 만이 아니라 세종시 등등 어디서라도 자주 보이죠..
대구에는 빈방도 꽤 많아서 자주 붙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