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회사 탈퇴하고 취미를 업으로 돌려 입에 풀칠한다는 글을 올렸던 사람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참으로 어려운 이 시기에 좋은 기회가 있어 벤틀리 플라잉스퍼 세단 차량의 천연가죽 스티어링휠의 천연가죽을 새로 교체하는 즐거운 작업을 해봤습니다.
이 글은 홍보가 목적이 아니라 정보 전달과 약간의 강좌 입니다. 원치 않으시면 ..... +_+;;;
벤틀리와 롤스로이스로 대변되는 최고급 럭셔리 세단 브랜드는 크고 넉넉한 배기량과 조용한 차량, 그리고 넓은 실내공간을 가득 메우는 최고급 소재로 호사스럽다는 표현을 쓰곤 합니다. 슈퍼카나 하이퍼카도 만만치 않습니다만, 패밀리카나 의전용으로 사용하기엔 벤틀리나 롤스로이드만한 차량이 없다고들 하죠. 흔히들 롤스로이스는 차량 한대를 완성화기 위해 소 가죽과 송아지 가죽, 그리고 양 가죽을 10-11마리 정도 사용한다는 말을 할 정도입니다. 실제로도 눈에 보이고 만져지는 거의 모든 곳이 부드러운 가죽으로 덮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죽의 질감은 매우 부드럽고 쫀득하기까지 합니다. 일반적인 양산 브랜드에서는 만져보기 어려운 촉감이죠.
실제로 벤틀리와 롤스로이스에서는 일반 양산가죽 그레이드의 대명사인 나파나 프리미엄 나파 등의 가죽을 거의 취급하지 않습니다. 천연가죽 품질과 가격의 최고등급은 아닐린이라고 하는데 자동차에서 사용하기엔 물성이 너무 예민하기에 한 단계 아래인 세미아닐린 그레이드의 천연가죽을 주로 사용합니다. 북유럽의 추운 고지대에서 키운 소를 도축해 만들기도 하죠. 계약 재배처럼 일정 수량의 일정 공간 내에서 일정 환경을 구축한 소를 공급받습니다. 천연가죽 가공업체는 폴트로나 프라우, B.O.W.[ 브릿지 오브 위어], 엘모, 파수비오 등이 있습니다. 최고 등급 아래로 일반 등급은 이글오타와, GST오토레더, 복스마크 등등이 존재합니다. 국산은 조광피혁, 삼양통상 등이 있습니다.
벤틀리는 주로 B.O.W.나 파수비오의 천연가죽을 사용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컬러는 블랙과 탄 브라운 계열을 사용하기로 유명하죠. 벤틀리 내장 이미지를 검색하면 블랙이거나 브라운이 주를 이루는 이유입니다. 블랙은 깊고 진한 느낌을 주고 탄 브라운은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어 줍니다. 색감이 주는 효과가 생각보다 크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물론, 화이트나 베이지, 레드 등의 컬러도 종종 사용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브랜드에서나 시그니쳐 컬러를 만들어 사용하는데, 벤틀리는 탄 브라운이 시그니쳐 컬러라고 말씀 드릴 수 있겠습니다.
스티어링휠이나 크래쉬패드, 도어트림, 시트, 센터콘솔, 헤드라이너, 필라 등 거의 모든 부품에 천연가죽을 아낌없이 사용하는데... 문제는 세미아닐린 가죽은 고급스러운 가죽의 촉감을 우선 시 하는 그레이드라 일반적으로 우리가 쉽게 접하는 가죽 대비 가공범위와 도장의 두께가 많이 얇습니다. 그래서 상처나 이염, 도장 벗겨짐 등이 눈에 띄는 경우가 있습니다. 천연가죽이 데미지를 입는 이유 중 하나는 유저의 손에서 나오는 땀과 유분, 그리고 핸드크림, 얼굴의 기름, 왁스, 실내에서 먹는 과자나 간식의 기름, 직사광선, 열 등 매우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그중에서도 단연 유분이 매우 위험요소라고 말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분이 가죽의 세포 내로 침투를 하게 되고 일정 시간 이상 한계치 이상으로 머금다보면 어느 순간 역전 현상이 발생을 하게 됩니다. 그때부터 가죽의 표면이 끈끈해지고 끈적하면서 무언가가 묻어나오는 느낌이 들게 되죠. 유분 제거를 하지 않아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유분이 밀고 나오는 순간부터는 마찰에 의해 도장이 박리되어 사진의 사례 처럼 색이 변하게 됩니다. 에이징과는 다른 개념의 현상입니다.
복원을 하고 싶은데 방법을 찾다보면 조색을 해 도장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효과적으로 보이죠. 하지만 가죽 내에 존재하는 유분을 제거하지 않고 그 위에 도장을 새로 하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임시방편의 방법이라는 것 입니다. 나쁘다는게 아니라 더 오래 아끼며 탈 차량이라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것이 더 좋다는 것 입니다.
그럼, 어떤 가죽으로 리빌드를 해야하고 어떤 공법으로 만들어야 하느냐? 가장 좋은 것은 영국 본사에 새로 발주를 넣어 새제품을 장착하는 것이죠. 하지만 가격이 걸립니다. 벤틀리 차주가 알아보니 센터에서는 약 1400만원의 견적이 나왔다고 하네요. 하긴... 재털이 하나에 3-400만원이라고 했으니 스티어링휠은 1천만원을 넘기는 자체가 납득이 갑.......니다................... 정식 센터를 우회하는 경우 약 700만원 정도의 견적이 나왔다고도 합니다. OMG 그래도 벤틀리니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도입부에서도 말씀을 드렸지만 벤틀리는 주로 애용하는 천연가죽 제조사가 B.O.W.와 파수비오 입니다. B.O.W. 탄 브라운컬러 세미아닐린 천연가죽은 아주 소량 제가 가진게 있었고 조금 더 초코렛에 가까운 브라운은 재고가 없어서 파수비오 한국지사 창고를 뒤져 가장 유사한 컬러의 가죽을 소량 구매해 왔습니다. 아우터림과 이너림의 컬러가 다르기 때문에 순정과 같은 느낌을 내고자 두가지 컬러의 두 회사의 천연가죽을 이용해 랩핑을 새로 하기로 했습니다. 가죽공수가 끝나고 차주에게 가죽의 질감 평가를 받은 후 차량에서 스티어링휠을 탈거해 가죽 스킨도 제거해 줍니다.
그리고 새로 랩핑을 해야하니 독일의 시카 글루를 교반하고 림과 천연가죽에 골고루 도포해 건조를 합니다. 일반 글루를 이용하게 되면 내열성능이 확보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일반 브랜드의 스티어링휠은 림의 인/아웃을 나누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글루 접착보다는 스레드 텐션을 이용해 단단히 고정을 합니다. 하지만 벤틀리는 인/아웃을 별도로 랩핑하는 타입이고 중간에 스레드를 이용한 봉제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접착력이 강하고 내구성능이 좋은 글루를 사용해야 큰 문제가 없습니다.
파수비오의 천연가죽으로 아웃 림을 먼저 랩핑해 줍니다. 그리고 인 림은 B.O.W.의 천연가죽으로 랩핑합니다.
천연가죽 랩핑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 본격적으로 니들 홀 [바늘 구멍]을 마킹하고 송곳을 이용해 천공을 합니다. 벤틀리는 스티어링휠에 재봉기를 이용한 스티치를 하지 않습니다. 변태를 같아요. 무조건 손으로 구멍 내고 손으로 바느질 하고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습니까. 순정과 동일한 공법과 마감을 위해 찾아온 사람인데.... 순정과 동일하게 만들어야죠.
손과 눈으로 정확한? 계산을 한 다음, 홀의 피치와 갭을 마킹합니다. 그리고 송곳을 이용해 천공합니다. 여기서 한 번 실수하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느질을 하면서 스레드의 텐션 조절에도 신중해야 합니다. 가죽 원피가 스레드의 장력보다 다소 약해서 무리해 당기면 홀이 찢어집니다. 그럼 또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합니다.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이래서 굿우드에선 장인아저씨나 아주머니가 천천히 작업을 진행하나 봅니다.
약 8시간의 고된 작업 끝에 완성된 스티어링휠을 볼 수 있습니다. 하아... 정말 하얗게 불태웠습니다. ㅇ_ㅇ ;;;;
작업을 진행하면서 드는 생각은 '차라리 영국으로 귀화를 할까...' 였습니다. 굿우드에 위장취업이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도 영국의 음식을 생각하면 한국이 천국입니다. 김밥천국 만세!
완성된 스티어링휠은 장착 전 차주에게 검수를 받습니다. 오케이 사인이 나오면 그 때 비로소 장착을 할 수 있습니다. 장착을 하고 보니 실내와 잘 어울립니다. 20만키로 동안 에이징이 된 오리지날 파트와의 약간 이색이긴 하지만 사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에이징이 될 것이고 차주는 새차를 타는 것 같다며 매우 만족을 해줍니다.
오리지날 파츠의 천연가죽 색감과 질감이 주는 감성품질과 새로 장착된 스티어링휠의 감성품질이 거의 유사하다고 하니 소재 선정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떠오릅니다. 공법의 동일성도 마찬가지구요.
가죽 교체를 위해 벗겨낸 순정 천연가죽과 새로 랩핑할 천연가죽의 비교 입니다. 검은 라인이 도장이 날아간 흔적입니다. 유분에 의해 가죽 표면에 광도 번지르르르 하죠.
아 근데 어떻게 글을 끝내야 하나요... 그냥 여기서 이렇게 끝. 즐거운 작업이었고 공정과 소재를 소개해 볼 수 있어서 기분이 좋습니다.
확실히 브랜드위 브랜드여서 엄청나네요..;
전 가죽교채만 25만원 들었습니다.. 우드살리는데.. 핸들 가죽바꿔주는업체가 몇없긴하고..
벤틀리정도면 제가 업자여도 거부했을것같..ㄷㄷ
일단 벤틀리 정도면 기념적인 사례가 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임했습니다. 가죽 재고도 이젠 없구요. ㅠㅠ
이런 힘들고 돈 안되는 일을 기꺼이 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신선하게 놀랍습니다.
저렴한 차량의 순정 가죽핸들이라도 손의 유분을 어느정도 흡수하기위해 저렴한 PU(폴리우레탄) 코딩된 스플릿레더(도꼬가죽)을 안 쓰고 굳지 스킨레더를 일부러 쓰는 이유였군요.
한땀 한땀 정성스러운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고급스러운 작업같아 매우 멋집니다.
대단한 기술이셔요-
나파도 부드러워서 관리가 쉽지 않다는데, (세미)아날린이라니... ㄷㄷㄷ 핸들이 까질 만 할 것 같습니다. 그 정도 그레이드차량은 그렇게 타다가 복원하고.. 그러는 것인가 봅니다. ^^
그리고 볼보 나파 가죽도 BOW 제품을 쓴다고 하더니, BOW가 이 업계에서 잘 나가는 곳이였군요?! ㅎㅎ
여튼 어려운 작업인데 고생하셨고 금손이십니다.
/Vollago
포르쉐는 클럽레더까지 올라가야 나파 넣어주는데...
이거 옵션 가격이 얼마더라 -_-;
...나파는 취급도 안해주는군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