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클리핑 현상이라는게 있습니다.
노래를 듣는데, 소리가 전체적으로 깨끗하게 나지 않고 뭔가 끝이 찌그러지는 / 뭉치는 / 지저분하게 소리가 들리는건데
가령 보컬이 끄르아~ 하고 소리를 지르는 파트라고 예시를 들면(...),
저 가사의 음절 끝끝이 소리가 말끔하게 떨어지지가 않아서
끄(크흐)르(브)아(하) 같은 소리가 덧씌워지듯 음질이 안좋아지는 현상입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주로 보컬이 탁하게 들리는 현상입니다.
원인은 자세한 설명이 어렵고(저도 잘 모르고) 대충 이해하려면
'너무 큰 출력으로 녹음을 하고, 그걸 음원으로 만들다 벌어지는 안 좋은 현상' 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보통 레코딩(실제 악기, 보컬 등을 녹음해서 트랙을 만드는 과정) 보다는
믹싱(트랙들을 모아서 하나의 음원으로 만드는 과정)과
마스터링(믹싱된 음원을 듣기 좋은 크기의 소리로 만드는 과정) 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대부분 마스터링 문제죠.
2.
문제는. 방탄의 음원의 경우...클리핑이 좀 심한 편입니다.
(이하 모든 음원은 무손실 flac 음원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래프가 여러개가 있는데
1. 제일 위에 파란/빨간색 = 개괄
2. Allpassed crest factor(파고율)
3. Histogram
이렇게만 보면 됩니다.
* 1번 그래프에서 색이 칠해진 부분이 위아래 끝까지 닿으면(=가득 차 있으면), 소리가 한계까지 증폭이 되어서 소리가 뭉게졌다는 뜻입니다.
* 2번 그래프에서 점선에 비해 실선 그래프가 올라간 만큼 음량이 증폭된 것입니다.
* 3번 그래프가 좌우로 부드럽게 곡선을 이루면서 -1, 1 방향으로 떨어진다면(즉 그래프가 반원 형태가 되면) 음악의 주파수(=높낮이) 가 모두 비슷한 출력으로 잘 녹음된 것이지만, 만약 3번 그래프가 수평선에 가깝다면 음질이 불균일한 것입니다.
또한, 3번 그래프의 양쪽 끝이 아래로 떨어지며 끝나지 않고 위로 치솟은 것은 최고 출력을 넘어가는 부분이 많아 넘쳐 흘렀다는(...) 것이고, 그만큼 클리핑이 심하거나 아예 손상된 부분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래에서도 계속 1, 2, 3번 그래프라고 칭하겠습니다.
그래서 1집 Danger 보면, 음 뭐. 심하군요.
그 다음 화양연화 갑니다.
2번 그래프는 Danger 보다 나아졌지만..
1번, 3번 그래프를 보면 아주 신나게 음질이 깎여나갔습니다. 1집보다 마스터링이 더 안좋아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
클리핑 체감을 위해선 브릿지 부분 진의 보컬(하늘이 파래서- 햇살이 빛나서-) 부분의 보컬에 집중하시면 이게 클리핑이구나 느끼기 쉽습니다.
윙즈 앨범입니다! 피땀눈물에서는 좀 좋아졌습니다. 클리핑이 없는 건 아니지만(1번 그래프)
출력 오버가 많이 줄어들어서(2번 그래프)
클리핑이 되는 부분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3번 그래프)
YNWA 앨범의 봄날도 비슷하군요. 하지만 잔잔한 장르의 곡이라서 클리핑이 더 아쉬운 노래가 봄날인데..
제일 첫 파트, RM의 '보고싶다' 에서 '다' 소리가 어떻게 마무리가 되는지 잘 들어보세요. 클리핑으로 소리가 바스러집니다.
럽유어셀프, Fake love 입니다....
악기소리가 노래를 빈틈 없이 채우는 노래는 아니지만, 소리가 좀 강하게 들어가는 편이죠(베이스가 계속 깔려있기도 하고) 그래서 증폭이 많이 된 편입니다.
결국 신나게 펑펑 소리가 터지는(3번 그래프의 양쪽 끝에서 솟구친 부분) 노래가 되었습니다.
제일 클리핑을 선명하게 들을 수 있는 파트는 2절 RM의 '웃어 봐!' 파트에서 '봐' 를 잘 들어보면 소리가 좀 바스러지죠.
3
자 방탄의 음원이 좀 이런 편인데...... 왜 이랬을까요?
빅히트의 (혹은 외주 준) 프로듀서나 믹싱 엔지니어,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다 저도 아는거 모르는 바보들이라? 이럴 가능성은 낮죠.
이 얘기를 할때 다시 한번 짚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이런 클리핑의 중요 포인트를 다시 짚어보면
- 출력 세게 해서 소리가 망가지는 현상이다
라는거죠. 근데 왜 출력을 세게 했을까요?
물론 사람들이 좋은 스피커로 노래를 듣는 경우도 많지만, 팬이 아닌 사람들이 사실 노래를 딱 틀어놓고 집중하며 빡세게 듣진 않습니다.
보통 지나가며 듣고, 누가 추천해주며 듣고, 유튜브 자동재생으로 얻어걸리고, 그러다 팬이 되고 그러는거죠.
이 포인트가 중요한데, 즉 지나가며 대충 들어도 노래가 귀에 박히는게 중요합니다.
그래서 노래를 작곡할때엔 후렴구에 후킹 멜로디를 넣고, 소위 "싸비"에 힘을 많이 주고
뮤비를 만들때는 지나가며 어짜다 보다가도 와 쩐다 하면서 볼 수 있도록 공을 들이고
믹싱/마스터링을 할때는? 소리가 잘 들리게 만듭니다. 워딩을 잘 봐야 합니다. 음질 좋게 좋은 소리로 들리는게 아니라, 그냥 "잘 들리게" 하는게 최우선입니다.
그래서 지금 시점의 대중음악들은 대체로 출력을 한계치까지 끌어올려서, 지나가며 들어도 '이게 노래다' 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겁니다. 출력이 강하면 아무래도 소리가 잘 들려요.
거기다 하나 더. 지나가며 듣고- 라고 했죠?
출력이 강하게 녹음된 음원은, 핸드폰 스피커로 재생했을때 소리가 더 또력하게 들립니다. 이게 중요하죠.
왜냐면 클리핑으로 음질이 안좋아져봤자 핸드폰 스피커로는 그 안좋은 음질(소위 소리 끝의 바스러짐)이 들리지가 않습니다(....)
핸드폰 스피커가 왜 갑자기 나오냐면...... 방탄은 초기 팬 대상층을 초등학생 고학년~중학생으로 잡았습니다.
이 연령층이 집에 있는 좋은 스피커로 노래를 들을 가능성은 적죠.핸드폰 스피커와 번들 싸구려 이어폰이 주된 청취수단일겁니다.
자, 그럼 노래의 음질과 노래의 전달력중 고르자면 당연히 후자겠고
노래의 전달력을 위해서는 핸드폰 스피커를 공략하는게 합리적인 선택인거죠.
그래서 전 방탄 음원의 클리핑이 전략적 선택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피해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알면서도 감수했다는거죠.
물론 이건 약간 궁예질입니다. 예측일 뿐이죠.
그냥 음질 신경 안쓰고 막 녹음해서 막 음원 냈을수도 있다 이겁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은 낮겠죠.
4.
대충 궁예질을 해봤는데, 그럼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소리 바스러지는 노래를 들어야 할까요?
놀랍게도 반전이 있습니다.
작은것들을 위한 시 입니다.
완벽하게 환골탈태. 굉장히 모범적인 마스터링입니다.
1번 그래프에서는 위 아래 끝에 절대 닿지 않고 있고,
2번 그래프도 보면 증폭 폭이 아주 적어졌습니다. 즉 클리핑 없이 음량을 영리하게 키웠다는거죠.
3번 그래프. 위에서 말씀드렸죠? 수평하지 않게 양끝으로 가며 뚝떨어지고, 양쪽 끝에서 갑자기 위로 치솟는 부분 없이 깔끔하게 떨어집니다.
이게. 이제는 팬덤이 너무나도 커셔저 위에서 말한 방탄(빅히트)의 '전략적 선택' 을 감수할 필요 없이 퀄리티를 추구해도 되겠다 싶어서 이렇게 된건지,
아니면 지급까지 개판치다가 이제 정신차린 것 뿐인지,
빅히트의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초무능이었는데 갈아치운건지
알수는 없지만..... 어쨌든 좋은 일이죠. 앞으로는 클리핑 없는 좋은 퀄리티의 음원을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아지고 있다는 거죠???
근데, DNA나 그것을 CD음질로 들으신 분들은 되게 막 풍부하다고.. 그거랑은 다른 걸까요?
그러면 세심한 배려가 되는 건가요.
저도 문외한이라 본문 써주신걸로 대충 추측만 해보았어요.. (실은 개뿔 아는게 없어서 덧글 달기를 망설임 ㅠㅠ)
씨디로 들었을때 좋다고 느꼈던건 음원의 차이(flac, mp3)에서 왔다기보단 재생방법?의 차이(씨디플레이어+스피커/헤드폰, 스마트폰스피커)에서 온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봤습니다...
또 서울대출신 머리 좋은 방피디라 전략적으로 그리하지 않았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