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쓸모’라는 말을 제목에 붙인 책들이 많이 나온다. 무엇이든 쓸모없는 것보다는 쓸모 있는 게 낫겠지. 독특하고도 중성적인 작가의 이름을 처음에 ‘박찬호’로 잘못 읽고 남자인 줄 알았다가 책날개의 저자 소개에서 ‘큰딸’이 글자를 늦게 깨우친 이야기를 읽으며 여성임을 알았다. 글은 늦게 알았지만 할머니에게서 어릴 적 수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자라 평생 이야기를 좋아하다가 결국 번역가이자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가 되었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던 저자는 스릴러소설을 주로 번역하는 일을 해왔고 작년에는 스릴러 소설을 쓰기도 했다. 다니는 도서관에 그 책이 있는데 대출 상태라 예약을 해 두었다. 서문에서부터 나를 사로잡은 그녀의 글 솜씨와 소설을 번역하며 쌓은 소설 짓기 내공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재미있게 읽은 ‘토니와 수잔’이라는 소설을 번역했다는 것을 알고 반가웠다. 인도어를 전공했지만 스티븐 킹의 소설을 영어로 읽고 영어책에 빠져 영어책 번역의 길을 걷게 되었다니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는 신비하다.
책을 읽으며 이 책의 주제가 ‘강인한 여성’과 ‘소통’이라는 생각을 했다. 소개되는 책들에는 다양한 여성들이 나온다. 남성의 그늘에 가려진 채 생을 꽃피우지 못하고 마감한 사람으로부터 여성 탐정이나 추리소설 작가, 혹은 남성으로 인해 서서히 파괴되어 가는 여성 등 저마다의 사연을 안은 주인공들끼리 이 책의 저자를 통해 서로 연대하며 안아주고 위로하는 느낌이었다. 그런가 하면 ‘소통’도 큰 화두였다. 소통이 없으면 외계인과는 물론 인간끼리도 평화롭게 살지 못한다. 맨 처음 소개된 소설 ‘활자 잔혹극’도 소통의 부재가 부른 참사를 다룬다.
소개된 책들 중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나 ‘걸 온 더 트레인’과 같이 읽은 책들은 반가웠지만 대부분은 생소한 책들이었다. 그래서인지 싱글맘에게서 자라고 현재도 싱글맘인 그녀의 삶이 더 흥미로웠다.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과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다는 것에 동경이 일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딸과 고양이, 그리고 강아지와 알콩달콩 살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언니 같은 그녀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 두고 아직 읽지 않은 소설 ‘파친코’ 작가와의 만남도 부러웠다. 번역가의 삶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집에서 일하는 느긋한 일상이 아니라 하루 일고여덟 시간 앉아 머리를 쥐어뜯는 중노동일지라도 글 쓰는 직업을 가진 분들을 보면 일단은 부럽다.
손에 쏙 들어오는 판형과 코팅되지 않은 표지, 그리고 도톰한 내지도 마음에 들었다. 내 책도 이런 종이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낯선 소설들의 등장에 내용을 모두 이해하거나, 동의하거나, 공감하진 않았지만 읽는 동안 왠지 행복한 마음이 드는 책이었다. 그녀가 바라는 ‘강인한 여성’이 나오는 책을 나도 쓰고 싶다고 늘 생각하고 있다.
* 목소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