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따라 범죄 영화를 자주 보다 보니 경찰들의 삶에 대해 궁금한 마음이 점점 커졌다. 이웃 분의 블로그를 보다가 이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 도서관에 검색하니 아직 시 전체에 한 권도 구비되어있지 않은 5월에 나온 따끈따끈한 책이어서 바로 구매해 읽었다. 식탁 위에 올려 둔 이 책 표지를 보고 아들이 흥미를 보여 신간이라고 했더니 엄청 오래된 책인 줄 알았다며 웃었다. 표지가 레트로 감성이긴 하다.
앞부분을 읽다가 몇 년 전 재미있어 몇 번이나 보았던 영화 ‘걸캅스’에 나오는 라미란 님이 연기하신 전설의 형사 ‘미영’이 혹시 이분을 떠올리며 만든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순경 공채 시험에 합격해 경찰 생활을 시작한 저자는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여자형사기동대’ 창설 멤버로 선발된다. 23세에 한국 최초의 강력계 여형사가 된 것이다. 경찰이 된 후 유도, 태권도, 검도를 익혔고, 강력반장을 비롯하여 마약범죄수사팀장, 프로파일링 팀장과 화재감식팀장을 역임하는 등 엄청난 활약을 하였다. 현재는 퇴직하고 제주에서 책방을 열어 아픈 마음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다는 것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여자 형사가 드물던 시절에 맹활약한 이분 덕분에 현재는 강력범죄를 다루는 여자형사들이 과거에 비해 많이 늘었다. 몇 년 전 학교 아이들의 안전을 담당하는 학교담당 여성 경찰 분과 학교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경찰과 식사할 기회가 평생 있을까 말까 한 나는 그분의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와 표정에 압도되었었다. 그분의 룸메이트였던 다른 여형사가 당시 범인을 잡으러 부산에 내려가 있다는 말을 듣고 너무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 통쾌한 마동석 님의 범인 잡는 현장과 다르게 실제 범인을 추리하고 검거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고 지난하며 위험천만한 것임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사건 현장에 남은 미세한 흔적에도 관심을 가지고, 주변 CCTV를 확인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 탐문수사를 하고, 때로는 한 달이 넘도록 잠복하기도 하며 범인을 잡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수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한 명의 범죄자를 잡기도 하지만 때로 우연찮게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범죄 집단을 소탕하기도 하는 종잡을 수 없는 범죄자 검거 현장을 이 책은 생생하게 그려냈다.
일이 벌이진 후에야 현장으로 달려가는 경찰들은 살면서 보지 않아도 될 것들을 많이 보게 되고, 마음속 깊은 곳에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는 어려운 직업이기도 하다. 안타까운 죽음과 끔찍한 현장이 얼마나 많을지 여린 사람은 경찰 일 오래 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집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속옷과 양말을 사 가며 오랜 기간 범인을 추적한 끝에 잡은 후련함은 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잘못한 사람을 벌주는 일을 게을리했을 때 국민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이렇게 막중한 일을 33년 동안이나 하시다니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쫓기는 범죄자도 두려움을 느끼겠지만 잡으러 가는 경찰도 똑같이 두렵다는 것을 책을 통해 알았다. 바쁜 중에 틈틈이 책을 많이 읽으셨을까? 모든 것을 경험한 오랜 경찰의 내공이 문장들을 통해 생생하게 느껴졌다. 간판도 없고, 커피나 책을 팔지 않고, 인간의 선악과 마음에 대한 책으로 채웠다는 저자의 제주 책방에 들러보고 싶다.
* 목소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