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태권도 가는 길에 조금 일찍 출발해 근처 도서관에 들러 책을 고르다가 태권도에 늦었다. 관장님은 안 계시고, 한 분은 회식이라 사범님께 혼자 수업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 늦어버린 것이다. 사범님이 보낸 메시지에 내가 답을 못해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듯 보이는 사범님께 오늘은 쉬자고 말씀드렸다. 혼자 수업을 받는 것이 얼마나 민망한지 얼마 전에도 느꼈을뿐더러 금요일에 휴식을 드리고 싶기도 했다. 덕분에 집에 오는 길, 카페에 앉아 궁금했던 이 책을 펼쳐 들었다.
그동안 수없이 들어왔던 김영란법을 만든 이가 이 책의 저자이다.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었던 그녀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을 제안하였고, 2016년부터 시행되었다. 학창 시절 공부뿐만 아니라 독서를 많이 했고, 특히 소설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법조계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수많은 문학책을 읽었다는 그녀는 쓸모없는 공부라는 말과 달리 오히려 법조인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 것 같다.
활자 중독에 여행을 갈 때도 몇 박인지에 따라 책의 난이도를 고르는 그녀의 모습이 나와 너무 닮아 웃음이 나왔다. 여행 도중 책을 다 읽어 금단증상이 생길까 여러 권을 챙긴다. 특히 외국 여행 때는 더. 책을 많이 읽으면서도 정리랄 게 따로 없는 그야말로 즐기는 독서 생활을 하고 있는 그녀는 어렸을 적 책이 귀하던 시절에 전집이 꽂힌 친구 집에서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 혼난 적도 있다고 한다. 엘리트 코스를 밟을 수 있었던 데에는 어린 시절부터의 독서 습관이 한몫했으리라 믿는다. 어린아이에게 암기 위주의 지식 공부만이 아니라 줄거리가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여러 체험을 하게 하여 시냅스 양을 증가시켜 뇌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좋다는 저자의 말을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해주고 싶다.
저자가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책들은 나에게 생소하다. 카프카의 ‘성’은 제목을 들어보기만 했고,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 ‘토니오 크뢰거’는 제목도 처음 들었다. 미셸 뚜르니에의 ‘흡혈귀의 비상’이나 이사야 벌린의 ‘고슴도치와 여우’ 역시 마찬가지다. 로스쿨 교수인 마사 누스바움이 썼다는 ‘시적 정의’나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 그리고 에드워드 싸이드의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라는 책도 처음 듣는다. 모두 읽고 싶은 독서 목록에 추가할 책들이다.
법조인으로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저자가 독서광이었다는 사실이 왠지 인간적이다.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 평소 책을 많이 읽는 이들을 보면 절로 존경심이 생긴다. 고등학생 시절 한 체육선생님이 늘 책을 들고 다니며 수업시간마다 책 읽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책 한 자 들여다보지 않았던 그때는 선생님의 그 말씀이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즐거움을 위한 독서는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 목소리 리뷰
https://www.youtube.com/watch?v=h51-XSFrr1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