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학의 고전 중에서 탑티어에 들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은 적이 없습니다. 무언가 이질감이 있었습니다. 이 책에 대한 소개에서 늘 쌍둥이처럼 같이 언급되던 '실존주의 철학'에 대한 낯선 느낌이라고나 할까...고등학생 시절 교과서에 나오던 철학을 공부할 때, 니체 이후의 근대철학부터는 '이게 도대체 뭔 소리인지' 감을 잡기도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난해함은 오랜 세월동안 머리 속 한 구석에서 근대 이후의 예술 사조, 예를 들면 추상화나 포스트모더니즘 문학같은 작품에 대한 거리감을 만든 모멘텀이었습니다. 좀 창피하기도 하지만, 뭐 아무렴 그럴수도 있지 뭐...나는 아직도 피카소나 마티스의 그림, 제임스 조이스나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합니다. 나의 문학적, 예술적 수준은 19세기 중반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나봅니다.
어떤 책이나 영화 같은 것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소감이나 느낌보다는 '해석'이 많은 경우가 있습니다. 카프카의 <변신>, 카뮈의 <이방인>, 샤르트르의 <구토>같은 책들도 그렇습니다. 문학적 식견이나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들이 저마다의 훌륭한 해석을 말합니다. '이 장면은 ~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 내용은 ~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저는 식견이나 재능이 뛰어나지 못해 작품과의 수수께끼 놀음을 싫어합니다. 작품이 난해한 질문을 던지면 늘 말문이 막히며 어떤 때는 그냥 책을 덮어버리기도 합니다. 그런 불상사를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어려운 책들은 잘 집어들지 않는 편입니다.
대학생 시절, 누벨바그의 소소한 유행이 있었습니다. 머릿두건을 쓰고 진격하는 노동자, 농민의 삶을 그린 거친 목판화의 풍경같던 시대였지만 한편에서는 문화를 향유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프랑스문화원을 성지로 여기며 불법 비디오테이프를 틀어주는 씨네마카페등을 전전하면서 고다르나 트뢰포 류의 영화들에 탐닉하던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그 무리에 들지는 않았었지만 가끔 친구들을 따라 그런 영화를 보고난 후에는, 물론 그 나름의 재미는 있었지만, 프랑스영화에는 왜 저리 맥락없는 장면들, 뜬금없는 대사들이 많을까하는 의구심 반 답답함 반의 감상이 있었습니다. 카뮈의 <이방인>을 읽으면서도 그 감정이었습니다. 의구심 반 답답함 반. 주인공 뫼르소의 성격이 그렇듯이.
장례식장, 집, 극장, 데이트, 친구네 집, 그 친구네 동네, 법정, 감옥의 장면이 계속 이어지며 서로 연관 될듯 말듯한 묘사와 대사가 읽는 내내 묘한 텐션을 유지시켜줍니다. 카뮈의 글솜씨는 훌륭합니다. 장례식장의 더위를 묘사할때는 나도 같이 더웠고, 주인공이 사고치기 직전의 어지러움을 묘사할때면 나도 같이 어지러웠습니다. '참 깝깝한 인간이네...'하고 별 공감 안되던 주인공에게 후반부로 갈수록 감정이입이 되는, 그래서 내가 늘 원하는 권선징악은 잠시 개나 줘버리게 되는 신기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이 소설이 상징하는 바와 철학적 의미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지 제목은 진짜 찐이구나...하고 이해했습니다.
과연 각각의 씬이나 전체적으로 작품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검색을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인플루언서들의 멋들어진 해석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전환하기보다는 내가 이 책을 읽고 느낀 이 감정을 온전히 내버려두기로 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