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인문학 모임 도서라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오래전에 읽은 것 같은데 자세한 내용은 생각나지 않아 처음 읽는 느낌이었다. 수없이 많이 들어온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한다’ 라는 말과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는 홍길동의 활약으로 길동은 이미 우리나라의 위인 같은 존재이다. 어린이를 위한 홍길동 이야기는 많지만 일반용은 많지 않았다. 이 책은 두고 읽기 좋을 것 같아 김탁환 님이 풀어 옮긴 책으로 중고 구입했다.
길동의 아버지 재상 홍문은 어느 낮에 잠깐 좋은 꿈을 꾸고는 내당에 들어갔다가 부인의 외면으로 외당의 몸종 춘섬과 동침한다. 이렇게 잉태된 길동은 나면서부터 재주가 비상하였다. 그럴수록 주변의 시기를 받는 법. 여덟이 된 길동은 자신을 죽이려 하는 곡산의 계략을 눈치채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집을 떠날 것을 암시한다. 까마귀 울던 날 자객을 없애고 길을 떠나는 길동. 여기까지는 그럴 수 있겠다, 싶은 내용들이나 이후로는 길동의 비범함이 인간의 것이 아님이 나온다. 쉽게 들 수 없는 바위를 옮겨 활빈당 장수가 되고, 합천 해인사 창고를 털며 두령이 된 그는 포도대장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탐관오리들을 혼내주고 굶주린 백성을 돕던 그는 결국 임금의 명으로 병조판서에 오른다. 황건 역사를 부리는 신통한 재주의 홍길동을 막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어느 날 삼천 군사를 거느리고 다시 길을 떠난 길동은 ‘을동’이라는 짐승 두목을 죽이고 요괴들에게 잡혀 있던 세 여자를 부인으로 맞는다.. 부하들과 제도에 들어간 지 삼 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세상을 하직하려 함을 알고 집으로 가 형 길현을 만난다. 어머니를 모셔오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묘를 만들어 삼년상을 마친 그는 중국을 섬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내는 율도국의 왕이 되고자 격문을 보낸다. 싸워보지도 않고 문을 열어주던 다른 도성과 달리 왕은 끝까지 저항하나 신출귀몰한 길동을 이길 수 없어 패하고 자결한다. 율도국을 평정한 길동은 백성을 사랑하고 덕을 베풀어 태평한 나라를 만든다. 집에 남은 형도 한림학사에서 병조정랑으로 연달아 승진하며 삼정승과 육판서를 지냈으며 동생을 그리워한다.
나무 위키에 찾아보니 얼자로 태어났지만 효심과 우애가 남달랐던 길동의 이야기를 실존 인물에서 따 왔다고 한다. 실제로 도적이었던 홍길동은 높은 사람들을 인맥으로 한 지능형 범죄자에 가깝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의적 홍길동 이야기는 다른 이들에 의해서도 회자되어 왔었는데 허균은 괴력과 분신술, 신장을 부르는 소환술 등의 초능력을 가진 슈퍼히어로를 만들었다. 원래 배경이 세종부터 문종이라 조선 후기 양반 신분을 돈으로 사던 때와 달리 신분제도가 엄격하여 얼자(천민 첩 사이의 아들)로서의 설움을 가중하여 표현 가능했을 것이다. 연산군 통치기에 활동했던 실제 홍길동도 양반가의 얼자였다고 한다.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기도 하고 멀쩡한 나라의 왕과 싸워 율도국을 통째로 갖지만 탐관오리를 벌하고, 얼자의 신분으로 병조판서에 올라 신분사회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백성을 사랑하고 덕으로 다스린 홍길동의 이야기는 요즘 등장하는 슈퍼히어로 영화보다 스펙터클한 면이 있다. 실제 인물을 모티프로 하여 창조해낸 허균의 홍길동(실제 인물과 한자가 다르다고 한다)은 이후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사랑을 받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관공서의 양식 샘플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렇게 유명한 홍길동을 이제야 제대로 만난 것 같아 감개무량하다. 책에 담긴 그림이 재미를 더했다. 길동이 잉태되는 과정이나 일부 내용이 과격한 면이 있어 어린이용 홍길동이 새롭게 많이 나왔나 보다.
* 목소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