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린을 뒤늦게 배우고 너무 즐겁게 연주하고 있는 나는 바이올린이라면 눈이 번쩍 뜨인다. 얼마 전에도 바이올린 제목이 들어간 책을 읽었는데 같은 책인가 하고 내용을 보니 다른 것이었다. 블로그에 리뷰가 없는 걸 보니 얼마 전에 읽었던 책은 큰 감흥이 없었나 보다. 요즘은 읽었던 책도 다시 빌려오는 등 건망증이 심해 조금 낯익은 책인가 싶으면 블로그에 한 번 검색해 보는 습관이 생겼다.
책의 주인공은 프랑스 바이올리니스트 요하네스 칼레스키이다. 너무 어린 시절 데뷔했다. 다섯 살에 집시의 바이올린의 연주를 듣고 바이올린을 배우기로 한 그는 순식간에 더 배울 게 없을 정도로 성장하여 2년 후 손이 아닌 마음으로 연주하는 훌륭한 연주자가 된다. 그에게 불행은 불현듯 찾아온다. 바이올린을 가르치기도 하고 외롭지만 나름 행복한 생활을 하며 오페라를 작곡할 꿈을 꾸던 그는 징집 명령을 받고 서른한 살의 나이에 전선으로 향한다.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점령지 이탈리아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난다.
바이올린을 오래 연습하면서 악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비싼 악기라고 다 좋은 건 아니겠지만 악기가 가진 고유의 목소리가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연주자라면 악기 장인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상태 나쁘던 악기가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후 전혀 다른 소리가 나기도 한다는 걸 느낀 적이 있다. 요하네스가 만난 바이올린 장인 에라스무스가 그러했다. 그는 한때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아들 프란체스코 스트라디바리 공방에 있었다.
책은 이렇게 요하네스와 에라스무스의 이야기로 나뉘고 둘의 이야기는 검은 바이올린으로 귀결된다. 에라스무스가 검은 바이올린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사연과 검은 바이올린을 켠 후 인생이 바뀐 요하네스의 이야기가 동화 같으면서도 조금은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악기와의 운명적인 만남에는 소유욕이 존재한다. 과다한 열정과 욕구가 불러오는 파국은 비단 바이올리니스트나 장인이 아니어도 맞닥뜨릴 수 있기에 이 책이 단지 바이올린이나 음악가만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200년 하고도 수십 년 전 과거로 가 전혀 낯선 장소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 보는 일은 흥미로웠다. 음악과 바이올린이 있었기에 더 그러했다. 과도한 열정이 영혼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열정 없이는 대가가 될 수 없다. 그 사이에 위태하게 살아가는 우리들. 그 무엇이 되었든 열정은 갖되 욕심은 버려야겠다.
* 목소리 리뷰https://youtu.be/_bY3FBW0sR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