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이 책을 보내주셨다. 30년 동안 죄수와 사형수들을 상담해 온 분이 죽음을 앞두고 쓴 책이었다. 프롤로그부터 어투가 독특했다. 인생 선배가 후배들에게 자상하게 인생 이야기를 해주는 듯했다. 내용은 더욱 그러했다.
40대부터 사형수를 만나 온 저자는 외출을 할 때 돌아오지 못할 것을 예비하기 위해 정리정돈을 하고 나간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사람들을 많이도 만났기 때문이리라. 30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죄수들과 사형 집행을 앞둔 이들을 상담하면서 마음이 참 많이 아팠을 것 같다. 저자는 그들을 통해 인생의 지혜를 배웠다고 했지만 죽음을 앞두고 암울해 있는 사형수를 보는 마음이 어땠을지, 그리고 대신 전해오는 공포와 두려움, 이별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것들이 암세포가 되어 그녀의 몸을 공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대장암 말기에 발견하고 두 번의 수술과 여러 번에 걸친 항암치료 끝에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 그녀의 마지막이 결연하여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녀가 남긴 유서가 눈물겹다. 딸이 그것을 보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을까?
투병 중에도 글을 쓰고 강의를 다녔던 저자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그동안 받았던 상과 타이틀들을 모두 버리고 통장의 직책으로 끝까지 봉사했던 홍익인간의 삶이 담긴 이 책은 읽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나이만 먹고 지혜를 갖지 않은 사람은 추한 늙은이라는 말이 마음 깊이 와닿는다. 나이를 먹을수록 인생의 지혜를 쌓아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적어도 욕심을 내려놓고, 집착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그녀가 예로 들었던 죽음을 앞두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공평한 죽음을 맞은 록펠러와 진시황처럼 말이다.
죄수의 이야기뿐 아니라 자녀를 키우는 엄마에 대한 충고도 있다. 똑똑한 엄마보다 마음이 따뜻한 엄마가 되라는 말이 크게 와닿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엄마였을까, 돌아보게 된다. 따뜻한 엄마의 자녀들은 결국 나쁜 길로 가지 않고 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해낸다. 든든한 버팀목이 있기 때문이다. 똑똑한 엄마의 매니지먼트를 받는다고 모두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라 하였다.
책을 쓸 당시 사형 집행이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은지 15년이 되던 해였다. 이 책이 나온 지가 10년이 되었으니 25년 동안은 사형 집행이 없었던 셈이다. (이 책은 개정판 1쇄라 되어 있다.) 그녀는 자신이 상담했던 가족 없는 사형수들을 무덤에 묻어주기도 했다. 사형수들은 언제 형이 집행될지 몰라 늘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고 한다. 연말이 되면 집행되는 경우가 많아 특히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만나고 보면 한결같이 나쁜 사람 없고, 죽음 앞에 선하지 않은 이가 있으랴? 그들을 보내고 때로 남은 가족들까지 챙기는 쉽지 않은 일을 오랜 시간 한 저자가 정말 존경스럽다.
---- 본문 ---
- 사람들은 내가 30년 동안 종교위원을 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봉사를 했냐고 물어. 그것은 절대 잘못된 말이지. 그 시간은 봉사의 시간이라기보다는 배움의 시간이었어.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인간 공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해주는 인생 공부였던 거야. 알고 보면 사형수는 우리 종교위원을 공부시켜주고 간 사람들이지. (30)
- 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 마음과 주변 정리를 해. 집 안이 더러우면 청소하듯 마음 청소를 하는 거지. (64-65)
1.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 이름을 수첩에서 지운다
2. 버릴 것 찾아보기
3. 살림 위치 바꾸기
4. 복잡한 서랍 정리하기
5. 집 안을 음악으로 가득 채우기
- 엄마 가슴은 절대 차면 안 돼. 엄마는 똑똑할 필요도 없어. 엄마 가슴이 뜨거운 아이는 그 열로 살아갈 힘을 얻는 거야. 그런데 요즘 엄마들은 가슴은 차고 머리는 똑똑해서 아이들이 탈이 많이 나거든.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면서 아이를 닦달하는 엄마들을 보면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 보여. ... 아이는 엄마가 전해준 가슴의 열기로 세상을 살아가. 엄마의 매니지먼트로 사는 게 아니야. 경제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세상살이가 힘들 때 엄마 가슴은 더 뜨거워야 해. 아빠에게는 그런 용광로가 없어. 남자(아빠) 자신도 뜨거운 아내의 가슴을 원해. (112-113)
- 자녀 교육은 엄마가 바로 서 있어야 제대로 돼. 엄마가 이리저리 휘청거리면 아이도 휘청거려. 엄마들이 선생님에 대해 떠드는 무성한 말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리는 부모가 현명한 거야. 나는 단호하게 말하고 싶어. 선생님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 엄마가 선생님을 함부로 대하는데 그 자녀가 건강한 경우는 본 적이 없어. 선생님이 추락하면 세상은 선생님을 향해 힘껏 돌을 던지지. 부모가 추락하면 누가 돌을 던지겠어? 바로 내 자식이 돌이 되어 나를 때리는 거야. (124)
- 멀쩡하던 한 가족이 2년 사이에 모래성 무너지듯 지상에서 사라져 버렸어. 허망하고 또 허망했어. 그러고 보면 지금 아들딸들 사랑받고 잘살고 있다고 뽐낼 일이 아니야. 반대로 외롭고 힘들다고 절망할 일도 아니야. 우리 인간의 계산법은 언제나 불확실해. 세상살이는 계산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아.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냐고? 지구에 사는 65억 명이 전부 다르듯이 365일 어느 하루도 같은 날은 없어. 우리가 예상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 일어나지. 그러니 항상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거야. 고통과 아픔도 영원하지 않고, 행복과 즐거움도 영원하지 않아. 지금 힘들다고 절망하지 말자.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은 병든 육체가 아니라 절망이야.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갖고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면 되는 거야. (181)
- 지혜는 나이 먹는 데 꼭 필요한 필수품이야. 이 필수품을 챙겨야 젊은 사람들이 훗날의 당신을 볼 때 ‘아! 저분처럼 늙고 싶다.’ 이런 말이 나오게 되는 거라고. 이 말을 풀어보면 초등학교 때 ‘장래 희망’을 적듯이, 나이 먹음에 있어서는 ‘당신이 장래 희망’이 되는 거란 말이지. (185)
- 감사함을 배운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져. 세상에 기뻐할 일이 너무나 많은 거라.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행복의 원천은 돈이나 건강이 아니라 바로 감사의 힘이야. (189)
- 다들 영원히 살 것처럼 무사태평이야. 사형수들은 안 그래. 그들은 매 순간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죽음을 의식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어. 이게 감옥 안의 사형수와 감옥 밖의 사형수가 다른 점이야. 나는 감옥 밖 사람인데, 오랜 세월을 사형수들하고 가까이 지내다 보니까 내 머릿속에 이런 말이 박혀 있어. ‘나는 언제든 죽을 수 있다. 그러니 내 사전에 내일은 없다. 바로 지금이 언제나 전부다.’ (209)
- 이것이 삶의 원리. 인간은 아픔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거야. 내가 잠깐 입원했던 암병동에는 많은 암환자가 있었는데 성장의 터널을 지나는 모양새가 다 달랐어. 긍정적으로 암을 안고 가는 사람, 의사와 병원을 잘못 선택했다며 골이 나 있는 사람. 이들은 얼굴 색깔부터가 달라. 그러고 보면 아프고 난 뒤 모두 다 성장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아프고 나서도 성장하기는커녕 신세 탓, 환경 탓만 하는 사람도 있지. 선택은 각자의 몫이야. (214)
* 목소리 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