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에서 받는 책을 줄여야 한다, 생각하면서도 재미있게 생긴 책들이 오면 거절을 하지 못한다. 소설 쓰기에도 관심이 많은 나는 드라마 작가이자 영화의 각본을 썼다는 저자의 첫 소설이라는 것에 호기심이 생겼다. 중국 요리는 잘 모르지만 자장면을 너무 좋아하는 나는 중국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책에는 많은 주인공이 등장한다. 영화로 치면 주연은 두위광이라는 70대 중반의 산둥 출신의 화교 요리사이다. 사실 그는 아주 어렸을 때 우리나라에 왔고,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구타, 그리고 배고픔을 피해 중국집에 들어가 11살부터 식당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중국에서 요리를 배운 것이 아니고 우리나라에서 배웠지만 그는 정통 중국요리에 대한 식견이 대단했다. 어깨너머로 배운 데다가 요리에, 그리고 맛보는 데 천재 기질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평생을 주방에서 살아오는 동안 자신이 만든 중국 냉면의 아이디어를 고스란히 뺏기기도 하고, 배신을 당하기도 하면서 가시 돋친 노년을 맞는다.
원래는 유명 정치인들이 찾아와 식사를 하던 고급 청요리집이었지만 동네 중국집으로 전락한 중화요릿집 건담. 하지만 주방은 여전히 늘 살벌하고,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이다. 아직 많은 이들이 함께 요리를 만들고 있지만 건담 싸부의 거친 입담과 맛을 잃은 혀, 그리고 치매 기가 보이는 행동들 때문에 점점 미래가 어두워진다.
저마다의 사연으로 건담을 찾은 주방 식구들은 또 저마다의 이유로 떠날 준비를 하고, 위광은 살얼음 같은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그에게도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일본과 프랑스에서 유학한 분자요리까지 하는 본경과 차를 좋아하는 말없는 나희는 아픈 위광을 찾아 살뜰히 보살피기도 한다.
우연히 발견한 머릿속 종양을 제거하고 치매기가 사라질 수 있다는 건 소설 속 장치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심하게 아픈 후 위광은 달라진다. 거칠고 변덕 심한 노인에서 포용력 있고, 사근사근하게 동료와 손님들을 대한다. 자신의 아이디어와 명성을 가로챈 이들과의 한판 승부도 재미있게 그려진다.
책 속 내용이 너무 전문적이라 정말 놀랐다. 드라마 작가였던 분이 이 수많은 중국요리 전문 용어들과 요리법을 언제 섭렵한 것일까? 중국요리를 전문적으로 배운 분일지 궁금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속속들이 쓸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 책을 읽던 중 큰 중국집에 갈 일이 있었는데 메뉴에 정말 중국냉면이 있어서 재미있었다. 얼음 동동 띄운 우리나라 냉면과는 다르다고 하는데 음식에 있어서만큼은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는 나는 결국 그 메뉴는 시키지 못했다.
식당을 돌아다니며 중국요리들을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는 중국집에 가서 혼자 비싼 요리를 시킨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무척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짜장면 한 그릇도 배부른데 어떻게 여러 요리를 시켜 놓고 맛을 음미했을까? 그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썼을까, 하는 실제적인 의심이 가끔 이야기에 빠져들지 못하게 하기도 했지만 위광과 주변 인물들의 숨 가쁘게 진행되는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자세히 그려지는 장면과 개인이 가진 사연들을 보며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듯했다. 언젠가 이 이야기가 드라마로 나오지 않을까? 중국요리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겠다.
*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책을 읽고 솔직한 마음을 적은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