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자본주의자 by 박혜윤
미국 시애틀 외곽에서 100년이 넘은 낡은 집을 고쳐 살고
자연이 키운 제철 작물로 건강한 음식을 먹으며
좋아하는 일(글쓰기, 몸에 좋은 통밀로 빵 굽기)을 통해
적게 버는 대신 시간 부자로 살며 의미를 채우는 생활.
처음엔 단순히 평화로운 자연인을 엿보는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읽어 나갈수록 도시 생활에서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옭아매던 것들로부터 자유함을 얻는 과정을 보게 된다. 더 나아가 제대로 된 삶이라면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하게 된다.
저자는 결혼 후 첫 아이와 둘이서 5년간의 미국유학을 마친 후 자신이 살고 싶은 진정한 삶을 찾겠다고 가족(남편, 두 딸)과 함께 미국의 시골 마을로 떠난다. 그간의 학업이 아깝다는 생각과 주변의 걱정(뭐 먹고살래), 사회의 편견을 넘어서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떠나야만 제대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싫어하는 일을 하지 않는 자유를 얻기 위해 최소한의 노동(그것도 본인이 좋아하는 것만)으로 생활을 꾸려간다. 처음엔 속세를 떠난, 세상과 단절된 자연인을 생각했지만 사실 그들은 직장을 떠났을 뿐 세상이 주는 편리와 이익을 모두 누리며 살아간다. 그래서 제목이 '숲속의 자본주의자' 인가보다.
부부는 일주일에 두 번 통밀을 갈아 빵을 만들어 팔기도 하고 글을 쓰거나 번역으로, 이메일 구독 서비스로 약간의 돈을 번다. 이 일들도 스스로의 발전과 즐거움, 만족감을 주는 것들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돈으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포기하기도 한다. 진짜 필요한 것들만 고르다 보니 인터넷, TV, 식기세척기, 빨래건조기, 토스터기 등이 없고 옷도 최소한의 편한 옷으로 살아간다. 대신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인터넷을 사용한다. 집 주변 넓은 땅에서 자라나는 제철 작물들을 채집해서 먹거리를 얻고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이 함께 보내며 행복을 누린다. 그런 생활을 하는 동안 직장에서 입에 달고 살았던 커피와 늘 하루의 마무리를 함께 했던 와인에 대한 의존성을 극복하고 스스로 원할 때만 즐길 수 있게 된다. 또한 너무 친절하고 정겨우면서 동시에 열성적인 트럼프 지지자인 이웃 부부를 통해 정치적 다름으로 그 지지자들을 판단하던 선입견도 버리게 된다.
많은 부분에서 생각과 생활을 비워냄으로써 채우는, 단순하게 사는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의문이 들었다.
아내와 첫째 아이의 5년 유학생활을 외조하며, 또 그 사이 생긴 둘째의 양육을 본가에 맡겨가며 힘들게 도와서 공부를 마쳤지만 정작 아내가 졸업 후 전공과 무관한 삶을 살겠다고 했을 때 남편의 반응은 어땠을까?
책 리뷰와 기사들을 찾아보다가 남편이 비슷한 시기에 쓴 책을 발견해서 읽었는데 이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화해하고 타협해 왔으며 여러 어려움을 겪은 후에야 지금의 안정과 행복에 이를 수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남편은 오랜 기러기 생활을 하는 동안 겪은 극도의 외로움과 고통 때문에 어떤 형태든 함께 살기를 원했고 아내의 뜻을 따라 시골로 오게 된 것도. 그리고 그들이 시애틀에 타운하우스를 갖고 있는 것도 알게...
으읭??? 사실 그들은 '숲속의 월세생활자' 였던 것이다.
자본주의를 제대로 누리는 그 모습에 잠시 뒤통수를 맞은듯한 실망감이 들기도 했지만 그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리스크가 적은 방법일 거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많은 철학자, 과학자들이 부자이거나 귀족이었고 남는 시간에 '잉여력'을 발휘하여 세상을 바꿔온 것도 사실이니 말이다. 아무튼 자연에 동화되어 여유롭게 사는 것과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것이 서로 멀지 않은 것임을 얼얼한 뒤통수를 만지며 곱씹어 본다.
내일부터 열심히 KRW를 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