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Man's search for meaning)
by 빅터 프랭클 , 이시형 옮김
어느 책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언급한 이 책을 메모했다가 읽게 되었다.
빅터 프랭클은 젋은 정신과 의사였는데 2차 세계대전 당시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가게 된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가스실에서 죽게 된 곳, 살아남은 사람들도 이유 없는 폭행과 멸시, 굶주림 등 극한 상황 속에서 제정신으로 살아남기 힘든 그곳에서 그는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그는 생사를 넘나드는 시간 속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버텨냈고, 훗날 이를 돌아보며 존재의 의미를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로고테라피라는 새로운 정신분석 이론을 만들게 된다. 이는 성욕을 주요한 동기부여 에너지로 보았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책의 많은 부분이 수용소의 끔찍한 환경과 어려운 상황을 묘사하는데 할애되어 있다. 막연히 알고 있던 전쟁의 참상과는 차원이 다른 내용이었다. 언제 어디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폭압적이고 무자비한 상황에서 절망에 빠져 넋이 나간 듯 겨우 숨만 붙어있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절절히 와 닿았다. 그 와중에 수감자들 중에 반장 역할을 하는 '카포'라 불리는 이들이 있었다. 인원이 부족한 독일군을 도와 수감자들을 관리하는 냉혹한 앞잡이 수감자. (일제 치하의 친일파가 겹쳐 보였다.) 누구를 가스실로 보낼지 편한 작업장으로 보낼 지를 결정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에게 잘 보이려, 살아남으려고 수감자들은 또 그들끼리 경쟁하고 비열해져야 했다.
'...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잔혹한 폭력을 일삼고 도둑질하는 건 물론, 심지어 친구까지 팔아넘겼다. 운이 아주 좋아서였든 아니면 기적이었든 살아 돌아온 우리들은 알고 있다. 우리 중에서 정말로 괜찮은 사람들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을.... '
그가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의사라는 직업과 그를 좋게 봐준 카포, 그리고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며 기억 속 깊은 곳에 묻혀있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가 떠올라서 처음으로 제대로 봤다. 책으로 접한 아우슈비츠 수용소보다는 훨씬 순한 내용들이었지만 영상으로 보는 것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독일군은 사람들에게 강제로 이주하는 거라 속인 후 짐들을 훔치고 사람들은 수용소로 보내는가 하면 그들이 죽인 시체에서, 화장 후 해골에서도 값 나가는 것들을 모아 (심지어 금이빨까지) 챙기기도 했다. 전쟁의 가해자였던 독일군 뿐만 아니라 수모를 겪던 이들도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성을 잃어버리긴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짓밟아야 그나마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겠지. 여러 장면들에서 인간에 대한 회의가 몰려왔다. 전쟁이 인간을 저렇게 만드는 것일까?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도 저럴까? 혹시 더 하진 않을까? 혹시 베트남에서 한국군은, 미군은 저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았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그리고 베트남에서 자행된 학살과 범죄들이 많았다는 얘기가 어렴풋이 떠 올랐다.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조건은 무엇일까. 인간다움은 또 무엇일까. 나는 수 십 년 동안 아주 운 좋게 큰 전쟁이 없이 평화로운 시절에 비교적 여유 있고 발전하는 나라에 태어나 행복하게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평화는 어딘가에서는 이미 깨졌고 많은 사람들이 소소한 행복을 느꼈던 시절을 그리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다. 전쟁의 공포와 아픔을 겪는 이들이 오늘 하루를 또 버텨낼 힘을 얻기를 마음으로 밖에 빌어줄 수 없는 현실이 괴롭고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