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지인들이 가끔 요즘 무슨책 읽냐고 묻곤 합니다. 뭐 정말 궁금하기보다는 인사치레에 좀 더 가깝겠지만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는다고 했더니 다른 책 제목을 들었더라면 나오지 않을 감탄사들이 나옵니다. 하긴 저도 누군가에게 <전쟁과 평화>를 읽는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랬을겁니다. "오! 정말?".
접근하기 쉽지않은 책이라는걸 저도 알고 그들도 알고 우리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겁니다. 단일작품 하나에 4~5만원 정도하는 책값의 부담도 적지 않을 뿐더러, 민음사판 기준 모두 4권, 합쳐서 3,000페이지짜리 책이란걸 차치하더라도, 그들 특유의 낯선 체계를 가진, 쉬이 입에 붙지않는 이름들을 가진 수백명의 등장인물, 깊숙히 들어가는 그들의 낯선 문화, 이를테면 생소한 이름의 입을 것들, 먹을 것들, 그리고 신분과 용도에 따라 다른 그 많은 탈 것들의 종류까지 - 톨선생님께서는 그 많은 것들에 대해 어찌 그리 다양하게도 표현하셨는지 - 그 모든 것들이, 또 역시 낯선 러시아의 역사와 함께 어우러져 흐르는 서사는 단순히 소설 이상의 아주 무거운 어떤 것이기 때문에 쉬울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대하역사소설들을 읽어나가는 동력 중에 하나가 그런 압박 속에서도 끈기있게 천천히 진도를 빼나가는 재미이기도 하겠지요.
대략 3주 동안 읽었습니다. 실제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니만큼, 실존했던 인물들과 가상의 인물들이, 실제 있었던 일들과 가상의 일들이 거대한 스케일로 얽히고 설켜, 시대와 배경과 스토리를 한꺼번에 꿰어 나가며 읽기가 쉽지 않았고, 도입부부터 대연회로 시작하며 초반에 순식간에 수십명이 등장하고, 이 사람들을 다 외어야하나 고민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잠깐잠깐 책을 물리고 노트도 하고 러시아 역사와 문화에 대해 뒤적거려보면서 천천히 읽었습니다.
이 책은 톨스토이가 서른다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집필을 시작한 소설입니다. 역사관, 사회관, 특히 인생관은 그 나이에 가지고 있다고는 믿기 어려울만큼 대단해서, 대문호로부터 뿜어져나오는 웅장함이 느껴집니다. 분량이 분량이니만큼 이야기는 아주 천천히 진행됩니다만 늘어지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톨스토이 본인이 직접 군생활 및 전투현장을 경험했기 때문에 군대와 전장의 묘사는 매우 정교하고, 사교계에서 직접 흥청망청 보냈던 세월도 가졌기때문에 귀족들 삶의 이야기 또한 매우 구체적입니다. 등장인물들 가운데 특별히 감정이입이 될 만할 사람도 없기 때문에 상당히 관조적인 입장에서 느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도 있습니다. 결국 중요한 인물은 한 명의 여인-나타샤-, 세 명의 남자-안드레이, 피에르, 니콜라이-인데, 그 외에도 선역이던 악역이던 비중이 더 많았으면 했던 매력적인 캐릭터들도 꽤 있었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바실리 공작가문의 사람들.
제가 본 이 소설의 주제는 신앙, 평화, 계몽입니다. 이건 톨스토이의 인생 전체를 가로지르는 그의 독실한 철학이기도 합니다. 이 책의 마지막, 가족들의 장면은 '평화'이고, 피에르가 각성했던 신의 존재 - 절대 멀리 있지 않고 언제나 바로 곁에 있다는 - 로 표현된 톨스토이의 '신앙'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같은 그의 무수한 작품들에서도 볼 수 있고 종교가 없는 저에게도 매우 경건하게 느껴졌습니다. 인생 후반기, 농노들의 복지와 교육에 집중했던 그의 영지활동이나 말기에 쓴 장편 <부활>로부터는 '계몽'을 읽을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소설가 플로베르도 같은 것을 느꼈듯이, 소설 중간중간 들어가서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늘어나는 톨스토이의 사설은, 반드시 그렇게 써야했을까?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만, 그의 나이 30대, 역사와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의 주체하기 어려운 역동성에서 비롯되었을 터이니 그럴만도 하다라는 이해심을 가져봅니다. 다만 그의 사상과 역사학의 깊이가 이 책의 번역자가 온전히 옮기기엔 다소 벅차서 좀 더 이해하기 어렵지않나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