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기념비적인 일이 하나 있었다. 오래전 아이였을 때 피아노 학원 구석에 앉아(학원 원장님이 정기구독하셨었나 보다) 차례를 기다리며 읽던 ‘샘터’라는 잡지의 한 편집자 분이 연락을 주신 것이다. 10월 호에 쓸 글을 요청하신다는 내용이었다. 한때 폐간 위기를 맞기도 했던 그 책은 요즘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표지와 이름 체를 바꾸고 호별로 주제가 있어 하나하나가 한 권의 책처럼 느껴지는 편집을 한다는 기사를 찾아보았다. 창간 50년을 넘긴 잡지라니 정말 축하할 만한 일이다. 어쨌든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책에 나의 글이 실린다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서 얼른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새벽에 일어나 스터디 카페에 가서 쓰는 마음의 부담이 없진 않았지만 계속 고쳐 가며 더 나은 글로 다듬는 중이다. 8월에 보내주신 ‘샘터’ 책을 보니 예전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내지가 얇지만 재질이 좋았고, 컬러 사진들도 멋졌다. 우리가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글들은 공감대 형성이 쉬웠다. 앞으로 계속 읽어보고 싶어 정기구독 신청을 했는데 그때 사은품으로 선택하는 두 권의 책 중 한 권이 바로 이 책이다.
양장본이라 마음에 들었고, 얼마 전 법정스님이 ‘무소유’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은 터라 이 책을 골랐다. 도착한 책은 생각만큼 예뻤다. 들고 다니며 모서리 부분이 까지는 게 안타까울 정도로 깔끔하게 만든 책이었다. 무소유에서 읽은 내용과 겹치는 부분도 있었지만 읽고 나면 잘 기억을 못 하는 터라 모두 새로웠다. 평소에 생각하던 근엄한 이미지와 다르게 어린 왕자를 몹시 좋아하고 그리스인 조르바를 동경하는 저자의 모습이 귀여웠다. 사람을 사랑했을 것 같은데 오히려 사람이 없는 적막강산을 좋아했다는 것도 의외였다. 여기서의 무소유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적용되는 것이다.
가진 것을 죄로 여겼던 이 책 속 간디와 닮은 스님은 마지막까지 소유를 즐기지 않으며 불편한대로, 외로운 대로 살다가 가셨다. 그가 존경받는 이유는 말뿐 아니라 실천하셨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책 속에서 자연에 살며 유유자적하는 부분이 부럽기도 했다. 아마도 자연인을 바라는 중년 남성분들이 이 책을 본다면 한 번쯤 이렇게 살아보고 싶어질 것 같다.
덜 쓰고 덜 버리기, 라는 부분은 요즘 내가 관심 있어하는 심플 라이프와 관련된 부분이라 공감이 갔는데 저자는 광고에 현혹되지 말고, 정신을 바짝 차리라고 강력하게 말하고 있다. 충동에 휘말리면 우리 자신이 쓰레기가 되고 만다는 것이다. 소유물은 우리가 소유하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를 소유하게 된다는 말이다. 필요는 충족하되 욕망은 자제하라고 하며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가지느냐가 아니라 없어도 되는 물건들로부터 얼마나 홀가분한지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없으면 불편하고 있으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개념이다. (119쪽) 내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소유당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적게 소유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