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머리말에서 정약전의 시가 처음 발견되었다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자산어보로 알려진 정약용의 둘째 형 정약전은 그와 정약용 형제를 아끼던 정조가 돌아가시자 흑산도와 강진으로 각각 서로 유배를 가게 되고 이후 죽을 때까지 만나지 못하는 운명으로 살았다. 두 형제가 주고받은 편지의 일부는 <여유당집>에 실려 있는데 정약전의 시와 산문을 찾은 것은 얼마 전이다.
정약전의 저서는 <논어난> 2권, <역간> 1권, <자산어보> 2권, <송정사의> 1권이 모두였는데 모두 섬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1816년 그의 사망 후 나주로 운구하면서 유작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가 정약용 탄생 250주년 기념 전시회 기획 과정에서 필사본 <여유당집> 뒤에 붙은 40개의 시를 발견한 것이다.
정약전에 대한 관심은 그에 관한 영화를 보면서부터이다. 정약용의 성실하고 바른 면이 배울만하다면 그의 형은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은 면을 본받을만하다. 정약용과 함께 한때 동인이기도 했던 정약전의 시는 정말 멋들어진다. 한시 그대로를 읽지는 못했지만 유려한 우리말로 바꿔 두신 저자 덕분에 약전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소나무에 대해 쓴 산문도 무척 인상 깊다. 영화에서도 잠시 비치지만 당시 귀했던 소나무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탁상행정 관료들 때문에 멀쩡한 소나무를 뿌리째 뽑기까지 했던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나라의 어려움이 백 년에 한 번씩 지속된다고 했던가? 지금은 전염병으로, 여러 가지 사건으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시기이다. 외세는 우리나라에 손을 뻗어 있고, 내부는 서로를 비방하는 것으로 바쁘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평범한 백성들이다. 자신의 안위만 걱정하는 관리가 아닌 백성을 진심으로 아끼는 위정자들이 되기를 약전의 마음으로 바란다.
머나먼 낯선 땅에 유배를 갔어도 그곳에서 새롭게 벗을 사귀고,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어려움을 이겼던 형제의 우애와 강인함. 그리고 그 와중에 수많은 저서를 남기고, 후학을 양성한 그들의 행적은 그들의 저서와 함께 역사 속에 길이길이 기억될 것이다. 백성을 사랑하고 학문을 벗 삼았던 그들의 정신이 오늘날에도 이어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