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문불여일독의 명작입니다. 후반부에 뜬금없이 폭주(?)하는듯한 내용이 나오긴 하지만, 소설 전체적으로 큰 서사없이 소소한 에피소드 나열에 가까운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제게는 흡입력이 감탄스러운 소설이었습니다. 어나더 레벨에 있는 작가의 철학, 인문학적 배경에 경이로운 필력이 어우러진 까닭일 것입니다. 실제로는 황량한 돌밭이 대부분인 크레타의 자연이 일말의 과장없이도 서정적으로 묘사되었고, 등장인물들은 지나가는 행인일지라도. 대사 한마디 없을지라도 인상적이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담담하게 쓰여지는 일상다반사에서도 독자에게 하이레벨의 감정선을 유지시키는 힘이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저만 그랬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2. 니체의 철학사상과 불교의 종교관이 지배합니다. 특히 니체의 종교에 대한 회의, '르상티망'과 '초인사상'의 개념 등을 알고 있다면, 널리 알려진 바대로 그가 니체의 추종자임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카잔자키스는 불교나 동양철학에도 상당한 이해와 공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보는 이 소설의 핵심이자 철학적 키워드는 '마음과 몸이 강해져야 한다'와 '비운다, 그러나 비우기 위해 먼저 채워야 한다'입니다. 기존에 이 작품에 대해 세상에서 가장 널리 회자되는 화두가 '자유인'이라는 것입니다만, '자유인'이라는 개념 자체보다 그 자유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가가 더 중요할진데, 위의 두가지 키워드가 해답이다....라고 저는 느꼈습니다.
3. 예전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이윤기님이 번역하신 책으로 한 권 가지고 있었는데, 사실 그 책에 대해 애착이 전혀 없었습니다. 바로 3중역 (그리스어->불어->영어->한국어)이라는 일독의 의지를 감소시키는 요인과 <그리스 로마 신화>와 <장미의이름>에서 읽었던 이윤기님 특유의 개성 강한 번역이 제 취향과는 그닥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놓고 읽지않은 죄송스러운 책으로 남아있었는데, 어느날 서점에 갔다가 '최초의 원전번역'이라는 띠지가 눈에 띄어 구입했던 책이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민음사에서 나온 책도 중역본이고, 그리스어 원역은 이 책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번역자분께서 평생을 그리스와 함께 하신 분이라고 하니 번역에 있어 어학능력만큼 중요한 '문화적 이해'라는, 다른 번역자에겐 없는 아주 큰 장점이 함께 했으리라 믿습니다. (출판사나 번역자님과 전혀 관계도 없고 책도 제돈제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