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에 관한 책에서 얼핏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 책 제목을 적어 두었었는데 즐겨 가는 도서관에 이 책이 있어 데리고 왔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왜 왔다갔다 하며 살았던 것인지 궁금했고 둘 사이에는 어떤 문화적 차이가 있을지도 알아보고 싶었다. 생각보다 두꺼운 책이었는데 내부의 본문 글씨가 파란색이어서 독특했다. 사실 나로 인해 이번 달 인문학 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으로 정하기도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중간에 읽는 걸 멈출 뻔했다. 유럽 스탠드업 코미디를 이해하기 어려운 아시아인이랄까? 동물이라는 범 세계적 주제가 주를 이루는 중반 이후부터 웃기고 재미있었다.
영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저자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공연을 하느라 길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장거리 운전에 지친 그는 이사를 하기로 하는데 공연 끝에 지친 몸을 평화롭게 쉬게 할 수 있는 아내 나탈리의 친정이 있는 프랑스 시골의 집을 찾아냈다. 영국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이다. 계약 후 갑자기 파운드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어렵게 들어오긴 했지만 영국 가는 저가항공이 있는 세 군데의 공항에서 각 한 시간 반 거리의 그곳에서의 새로운 출발에 단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시골 생활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동물을 사랑하는 아내 나탈리가 그녀의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자 아이 셋에 개, 고양이, 닭, 말, 토끼(일찍 죽긴 했지만)까지 키우게 된 그는 집에 오는 것이 휴식이 아니라 또 다른 노동의 시작임을 알게 된다.
그는 영국 '모드족'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데 모드족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 검색해 보니 패션에 민감하고 음악에 관심이 많은 조금 이전 세대를 이르는 말이고 단지 패션이나 음악 뿐 아니라 삶의 전반을 아우르는 하나의 문화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길에 다닐 때도 농장 일을 할 때도 멋진 차림을 고수하길 좋아한다. 깔끔한 그의 성격과는 다르게 수더분한 아내는 집에 함께 있어도 얼굴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동물 가족을 돌보느라 바쁘다. 그는 서서히 시골 생활에 적응하게 되고, 심지어 아내가 3주간 집을 비운 동안 혼란은 있었지만 아이들과 동물들을 훌륭히 건사하기도 한다.
사실 앞 부분을 읽는 동안은 내용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영국인으로 느낀 프랑스 문화에 대해 쓴 것이지만 나에게는 영국도, 프랑스도 익숙하지 않은 문화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이다. 스탠드업 코al디라는 장르도 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인가 인기를 얻고 있지만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어떤 것인지 모르고, 영국이나 프랑스나 나에겐 모두 외국인 그곳의 차이점도 잘 모르는 나는 문화 이야기가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중반 이후를 지나면서 이야기의 상당 부분이 동물 농장이 된다. 문화보다는 프랑스 시골에서 동물들과 공생하는 법에 대한 내용들이 나열되는데 그의 생활이 너무 웃기고 재미있어 피식피식 웃으며 읽었다. 그 부분은 책장도 잘 넘어갔다. 심지어 이런 곳에서 나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뱀과 두더지가 나오더라도 말이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저자의 사진과 짤막한 인터뷰 내용이 실려 있다. 책 읽는 동안 궁금했던 것이 조금은 해소되었다. 마음씨 좋은 아내는 상상했던 것처럼 후덕한 인상이었고, 생각보다는 얌전한 저자의 옷차림이 단정하고 패셔너블했다. 꽃이 만발한 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이 책을 읽고 잠시나마 농가 주택을 검색해보기도 했다. 시골에서 사는 삶이 불편하고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꼭 해 보고 싶다. 책을 출간할 당시 그곳에서 산지 11년 되었다고 했다.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영국인이 느끼는 프랑스 문화에 대한 이야기와 동물들과의 해프닝에 미소 짓게 되는 책이다.
--- 본문 내용 ---
- 프랑스의 의료체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들 하는데 틀린 말이 아니다. 아프면 언제든 의사를 볼 수 있고, 그런 의료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수술할 때 얼마의 돈을 내는 것도 전혀 아깝지 않다. 현재 프랑스의 진료비는 22유로이고, 그나마도 나중에 돌려받는다. 그래도 22유로를 받는 이유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프지도 않은 사람들이 의사랑 잡담하러 병원에 오기 때문이다. ... 불쌍한 영국의 의료체계는 의료서비스가 무조건 무상이어야 한다고 믿는 국민들의 기대로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영국에서 완전한 무상 의료 서비스는 지속 불가능하다. (109쪽)
- 프랑스로 이사온 후로 두더지를 몰아내려고 별의별 방법을 다 사용해 봤다. 전혀 효과가 없는 방법부터 시작해서, 박스에는 독약이라고 쓰여 있지만 두더지용 정력제가 분명한 약까지 전부 써 봤다. ... 그들이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미친 듯이 파티를 시작했다. ... 한 전문가는 폭약 사용을 권했다. ... 나는 두더지가 뚫은 터널 하나를 찾아내고 입구에 폭약을 설치했다. ... 쾅! 작은 흙 무더기가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하하!"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 하지만 잣히 보니 폭발을 피한 두더지가 더 빠른 속도로 땅을 파헤치는 게 아닌가! ... 다시 폭약을 설치하고 터뜨리고, 또 다시 설치하고 터뜨리기를 반복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날 오후에만 여섯 번의 폭발을 했지만 두더지는 여전히 살아서 정원의 지표면 바로 아래를 파고 다녔다. 죽기는커녕 다치지도, 겁도 먹지도 않고 승자처럼 의기양양하게 돌아다녔다. 그날 두더지와 나, 둘이서 정원을 초토화시켰고, 저녁이 되자 정원은 1차세계대전의 참호전을 보는 듯했다. 이런 일을 매해 반복했고, 나는 별짓을 다해도 두더지를 이길 수 없었다. (273-275쪽)
- '프랑스 관료주의'를 직접 겪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도 그 단어를 들으면 소름이 돋을 것이다. ... 내 생각에 프랑스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뉜다. 첫번째는 파리지앵, 즉 파리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다른 프랑스인들을 수준이 낮다고 내려다본다. 두 번째 그룹은 파리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 프랑스인들이다. 이 사람들은 파리 사람들은 진정한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 번째 그룹이 있으니, 레옹시오네르, 즉 공무원들이다. 파리 사람들과 '진정한' 프랑스인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집단이다. ... 프랑스인들은 공무원들이 파업하면 나라가 멈춘다는 두려움이 있다. (341-342쪽)
- 뱀은 우리 동네 골칫덩이다. 몇 해 전 마을사람들은 넘쳐나는 쥐를 해치우기 위해서 이 지역에 뱀을 많이 풀었는데, 이제는 뱀이 넘쳐나는 바람에 닭을 많이 키운다. 아마 닭이 넘쳐나면 여우들을 풀 것이고, 여우가 넘쳐나면 그때는 붉은색 재킷을 입은 사냥꾼들이 사냥개들과 함께 농장 주변을 휩쓸고 다닐 것이다. (371쪽)
-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누가 내게 총을 겨눈 적도 있었고, 총각파티에서 공연하다 말고 몸싸움이 일어나는 꼴도 보았고, 이제 막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을 상대로 공연도 해보았으며, 화가 난 너바나 팬들이 나를 때리고 칼로 찌르고, 차로 치겠다고 위협하면서 쫓아오는 걸 피해 달아나기도 했다. 고장난 비행기를 타고 뇌우 속을 날다가 필리핀 마닐라에 착륙해본 적도 있다. 프랑스에서 비행기 시간에 늦어서 캠핑용 밴을 타고 달리다가 차가 뒤집어지기도 했고, 화가 난 관중이 던진 재떨이를 피하기도 했으며, 지부티에서는 성매매를 하는 여성에게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다. 장에 탈이 나서 무대에서 쓰러진 적도 있고, 뭄바이에서는 자신의 직업에 지나치게 열심이었던 경비원에게 아래 급소를 맞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경험도 (둘째) 모리스의 여섯 번째 생일과 거기에 초대된 10여 명의 프랑스 아이들로 인해서 겪은 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만큼 내 능력의 한계를 느껴본 적도, 그만큼 통제가 되지 않는 상황에 놓인 적도 없었다. (411-4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