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움베르토 에코의 팬은 아닙니다. 그의 소설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를 읽었지만, 물론 재미있고 인상깊은 책이었지만 '팬'이 될 만큼 감동적이거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소설을 대체적으로 이해하려면 고대 및 중세의 철학, 역사, 문학, 과학, 그리스로마신화, 기독교문화, 역사, 교리 등에 대해 어느 정도 기본 지식이 필요합니다. 소설을 완벽히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체적으로'나마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몇번이고 "이걸 내가 이해하고 있는 중인가?" "잠깐 읽기를 중단하고 인터넷에서 좀 찾아볼까?" 등등, 이야기 속에 빠져들어가는게 아니라 계속 무언지 모를 약간의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안고 글을 읽어나가곤 했습니다.
그런 그가 쓴 일상에 대한 에세이는 과연 어떨까하는 호기심(+특별판에 대한 지름욕구)에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과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두 권이 포함된 세트를 구입했고, <미친 세상을...>을 먼저 읽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런 의심이 약간 있었습니다. 혹시 본인의 지식과 식견을 안그런척 은밀하고 고고하게 자랑하며 저같은 중생에게 무식함과 나태함을 까칠하게 나무라는 분위기는 혹시 아닐런지.
의심은 기우였으며,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시류에 대한 쉽게 읽히는 편한 글들이었습니다. 잡지에 연재되던 컬럼 모음집이고. 7개의 큰 주제 아래 각각 5~7개 정도, 모두 약 50여개의 컬럼이 수록되어있습니다. 대략 2002년~2010년 사이의 글들이 많았고, 때가 때이니만큼 그 당시 대중화 초입의 인터넷, 휴대폰에 대한 이야기들도 많았습니다. 10년~15년 전의 이야기이고, 역시 그가 본 인터넷의 기대와 우려는 오늘날 인터넷 문화의 현실을 보면 비교적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편입니다. 그가 기대했던 점, 우려했던 점이 대부분 현실화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세기의 석학다운 통찰력과 식견이었습니다. 물론 그가 신이 아닌 이상, 그의 생각과 다르게 지나온 흐름도 물론 볼 수 있습니다.
그 외 이탈리아와 유럽 전반의 정치, 문화, 종교적 이슈에 대해 짧게짧게 서술한 컬럼들이 많이 있고, 글쓰기, 독서에 대한 그의 평소 생각이 몇편의 컬럼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 개의 컬럼 당 2~3 페이지, 담담하고 소소하게 펼쳐놓는 그의 이야기들은, 에코표 지식과 정보 - 역사적 사실, 문화적 배경과 과학적 통계 -를 살짝살짝 양념처럼 곁들여 놓음으로써 타당함을 고급지게 보장하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살짝살짝' 곁들여놓음이 '아, 이 부분 좀 더 찾아보고 싶은데'하며 공부하고 싶게 만드는 효과까지 있었습니다!
저는 대략 3일 정도에 걸쳐 다 읽어버렸는데 살짝 후회 중입니다. 짧막한 컬럼들의 모음이라 시간을 두고 짬짬이, 한두편씩 천천히 읽어가는게 훨씬 더 유익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은 그런 식으로 읽어나갈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