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학년 선생님이 이 책을 사서 먼저 읽고 권해 주신 책입니다. 빌려 읽다 학교에 두고 오는 바람에 도서관에서 다시 빌려 읽었습니다. 이금이님의 책은 '알로하 나의 엄마들'로 처음 접했습니다. 너무 강렬한 책을 가장 먼저 읽어서일까요? 이 책까지 세 권 정도를 더 읽었던 것 같은데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능가하는 것을 아직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 정도로 그 책이 나에게 대단한 작품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도 나름대로 독특하고 재미있게 술술 읽힙니다. 처음에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는데 예상을 깨고 판타지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등장인물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긴 합니다.
부모님을 잃은 상만은 외삼촌 댁에서 지내며 일을 돕기도 합니다. 공부를 꽤 잘 하는 편이었지만 넉넉하지 못한 형편으로 대학을 고르는 일이 고민인 친구입니다. 그에게 갑자기 나타난 구(성은 허)는 조금 독특하긴 했지만 무한한 친절로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구의 집은 굉장히 부유해 보입니다. 부모님도 더할나위 없이 상만에게까지 호의적입니다. 그는 남은 학창시절을 구의 집에 드나들며 나름 행복하게 지낼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한 여학생으로 인해 금이 갑니다. 구가 쓴 글 때문입니다.
구토가 일어나기 시작하면 구는 이상한 일에 사로잡힙니다. 실제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하는 일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다른 구는 행각지 않은 일을 하고 돌아다닙니다. 이 책에서는 '평행우주이론'을 거론했지만 내 생각에 이건 '도플갱어' 같은 사건입니다. 평행우주에 또 다른 구가 갔다면 그 세계 속의 다른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데 이쪽 세계의 사람들이 다른 구의 행적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무척이나 신비롭고 상상력을 동원한 재미있는 설정입니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두 친구가 자라는 동안 거의 보지 못하다가 세월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나게 됩니다. 어른이 되어 간다는 것. 모진 세파를 견디며 홀로서기를 하고, 그럼에도 처음 겪는 일들에 다시 또 넘어지는 삶입니다. 주인공 허구는 그가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보여주는 중의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허구와 지상만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