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글쓰기 책들이 있습니다. 책을 좋아하다 보니 글쓰기에도 관심이 생겨 ‘작가’라는 소박한 꿈을 품고, 관련 책들을 눈에 띄는 대로 읽고 있습니다. 읽다 보면 정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있는 반면, 책을 위한 책쓰기를 권하는 것도 솔직히 많이 있었습니다. 이런 책들 중에서도 도움이 될 만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었고, 읽지 않는 것보다는 읽고 하나라도 건지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읽은 다음 블로그에 리뷰를 썼는데 어떤 분이 저자의 책쓰기 워크숍 금액이 상당히 비싸고, 강의 때마다 책을 강매한다는 내용의 댓글을 달아 주셔서 글을 비공개로 전환한 적도 있습니다. 한편으로 씁쓸한 기분이었지만, 얼마나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이름이 담긴 책 쓰기를 열망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그런 책에 비하면 책 혹은 글을 쓰는 비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왜 글을 쓰는지, 그리고 작가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말하는 정신적인 요소를 담은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목을 왜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라고 했는지 읽은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뼛속까지 작가가 되어야 진정한 작품을 쓸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책은 62개의 작은 챕터로 나뉘어 있고, 각 소제목만 읽어보아도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맥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글쓰기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글쓰기는 육체적 노동이다,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 작가는 위대한 애인이다, 그냥 쓰기만 하라,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천국이다, 익숙한 초원을 떠나라, 사무라이(가차 없이 고쳐 쓰기)가 되어 써라...’ 책꽂이에 꽂아 두고 글이 잘 안 써질 때 꺼내 읽으면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저자의 다른 책 <<글 쓰며 사는 삶>>이라는 책을 읽으며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이후 여러 글쓰기 책에서 이 책이 언급되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고 생각만 하다가, 얼마 전 헌책방에서 구입하고, 주말에 너무 오랜만에 손님 없는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며 읽었습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글을 쓰고 있는 순간만이 아니라 무심코 앉아 있는 시간들 모두가 글쓰기의 한 부분입니다. 미용실에서 내가 본 것, 냄새 맡은 것, 들은 것들은 언젠가 글을 쓸 때 그대로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앉아서 읽으니 두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유태인이자 40여 년을 글쓰기와 문학을 가르친 강사이자 불교신자이기도 한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기 워크숍과 명상 프로그램을 이끌고 있으며, 글만 잘 쓰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려 갤러리에 전시하는 화가이기도 합니다. 오랜 세월 글을 쓰면서 생각해 온 것들을 고스란히 담은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다른 글쓰기 책들과는 차별화된 그녀의 글쓰기 인생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래 전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며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꾸준히 글을 쓰고 관찰하며 나만의 글쓰기 노하우를 쌓아가고 싶습니다.
--- 본문 내용 ---
- 글쓰기는 재갈을 물리지 않은 야성이 숨 쉬는 공간이다. 여기에는 정해진 방향이 없으며 오직 그 순간 글 쓰는 사람과 다른 모든 것과의 연결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글쓰기 훈련으로 무장되어 있을 때 논리라는 그물에 걸리지 않게 된다. 이 훈련은 아름다운 정원에 가지치기를 하러 나가기 전, 다시 말해 좋은 책과 소설을 쓰기 전에, 우리의 힘을 갖추어 나가는 거친 야성의 숲과 같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건데, 그 정원에 닿는 길은 쉼 없는 훈련뿐이다. 지금 당장 자리에 앉으라. 지금 당신의 마음이 달려가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적어 내려가라. 제발 어떤 기준에 맞춰 글을 조절하지는 말라. 무엇이 다가오더라도 지금 이 순간의 것을 잡아라. 손을 멈추지 말고 계속 쓰기만 하라. (35쪽)
- 자신을 둘러싼 주변을 항상 깨어 있는 눈으로 관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너무 인위적으로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래, 나는 결혼식 피로연에 와 있어. 신부는 푸른색 드레스를 입고 있고 신랑은 빨간 카네이션을 가슴에 꽂고 있군. 그들은 다진 간 요리를 손님들에게 나눠 주고 있어.” 그것보다는 우선 마음을 편안하게 열어 놓고 결혼식을 즐겨라. 당신이 주변 상황에 자연스럽게 몰입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당신이 글을 쓸 때 정말 살아 숨 쉬는 듯한 생생한 기억들을 불러낼 수 있다. 웃을 때마다 빨간 립스틱이 묻은 앞니가 보이던 신부 어머니의 모습과 신부의 드레스 자락에서 폴폴 풍기던 향수 냄새까지 전부 당신의 글 속으로 불러낼 수 있다. (87쪽)
- 사물의 이름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근원에 훨씬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우리 마음속 흐릿한 부분이 선명해지면서 이 지상의 삶에 더 튼튼한 줄을 이어 주기 때문이다. 나는 거리를 걷다가, 내가 아는 식물들인 산딸나무나 개나리를 보면 그 장소에 더 깊은 친근감을 느낀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고, 그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 줄 때 느끼는 기분은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대한 명쾌한 증명인 것만 같다. ... 사물들 속으로 파고들라. 새, 꽂, 치즈, 트랙터, 자동차, 비행기 …… 이 모든 것의 이름을 배우라. 작가는 건축가이자 프랑스 요리사이며, 농부여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작가는 이런 것 중 어느 것도 아니어야 한다. (126~128쪽)
- <<아프리카의 푸른 언덕>>을 읽을 때 당신은 사파리 여행을 떠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된다. 또 때로는 섭정관 여인을 쳐다보고 있는 제인 오스틴이 되기도 하며, 뿌연 먼지 낀 텍사스 마을을 걷고 있는 레리 맥머티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작품은 그냥 글을 쓰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글쓰기는 다른 작가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절대 질투심이 자리 잡아서는 안 된다 만약 누군가 대단한 작품을 썼다면, 그가 작품을 통해 세상을 좀더 명료하게 만들어 준 것에 대해 당신은 진심으로 감사해야 한다. ... 그러므로 “그들도 훌륭하고, 나도 훌륭하다.”라고 말하자. 이 말은 많은 가능성을 만들어 준다.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어. 그러니까 나는 잠시 그들의 경로를 따라가면서 배우면 돼.” 얼마나 솔직하고 마음 편한 고백인가. 다른 작가들과 동지가 되어라. 마음 속에 있는 진실의 한 부분만을 찾아내기 위해 세상을 버리고 자신에게만 틀어박힌 존재가 되는 것보다, 자신을 통해 많은 목소리를 반영시키는 작가들과 동지애를 느끼는 것이 더 낫다. 우리는 더 큰 사람이 되어 두 팔로 세계 전체를 담는 글을 써야 한다. (143쪽)
- 헤밍웨이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 자신이 앉은 테이블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제임스 조이스가 있었다며, 카페에서 글을 쓰는 광경이 파리에서는 얼마나 일반적인가에 대해 적고 있다. (158쪽)
- 우리가 글쓰기에 열중해 있다면 장소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글쓰기에 빠져 있는 것 자체로 충분히 완벽한 것이다. 여기에 바로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든 글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위대한 자율성과 안전성이 있다. 진정 글을 쓰고자 갈망한다면, 결국 당신은 환경이 문제가 되지 않는 길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172쪽)
- “매일 글을 쓰라!” 이 규칙대로 실행하는데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의무감으로 했기 때문이다. 규칙만 따지는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다. 마음은 다른 곳에 두고 단지 규칙에 맞추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쏟는 것처럼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는 없다. 만약 당신의 기본자세가 이렇다면 당장 글쓰기를 중단하라. 일주일에서 멀게는 일 년이 되어도 좋으니 글쓰기에서 떨어져 있으라.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갈증을 느껴, 말하지 않으면 병이 날 것 같을 때까지 기다려라. 그런 다음 글쓰기로 돌아가라. 걱정하지 말라. 이것은 시간을 낭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어떤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지 분명히 알게 되어 낭비를 줄이는 결과를 가져다줄 것이다. ... 만약 하루도 쉬지 않고 몇 날 며칠을 계속 글쓰기에만 매달리고 있다면, 잠시라도 완벽한 휴식을 가져야 한다. 글쓰기와는 완전히 다른 일을 시작해 보라. 어둡고 칙칙한 방에 칠을 다시 해볼 수 도 있다. 그래, 흰색으로 칠해 보자. 신문에 소개된 요리법대로 간식을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당신의 모든 에너지를 글이 아닌 다른 일에 몰입시키는 것이다. (218~219쪽)
- 고독을 이용하라. 고독의 아픔은 당신에게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을 만들어 줄 것이다. 고독의 아픔을 받아들이고 그 고독을, 당신의 더 깊은 곳을 탐사하는 내시경으로 이용하라. (234쪽)
* 팟티 목소리 리뷰 *
https://www.podty.me/episode/14877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