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희 시인의 에세이만 세 권을 읽고 시집은 처음입니다. 건강검진 하는 동안 가볍게 들고 다니며 읽으려고 이 책을 골랐습니다. 검사 항목이 많고 사람이 워낙 많아 오랜 시간 기다렸는데 아름다운 시들을 읽고 또 읽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지루할 수도 있는 시간, 책이 있어 참 감사했습니다.
시인에 대해 알아보다 그녀의 드라마틱한 인생이야기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해방되기 3년 전 1942년 부산에서 태어났고,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으며, 1965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고, 여러 상을 수상한 그녀이지만 시인과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가난하게 사는 동안 그녀는 펜을 잡기 어렵습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을 한 번에 잃고 실의에 빠진 그녀는 삶의 끈을 놓을 생각도 했지만 찾아간 직소폭포에서 다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이후 외롭지만 꿋꿋하게 시를 벗 삼아 살면서 수많은 작품을 남기셨습니다. 시집도 많지만 <시의 숲을 거닐다>, <작가수업 천양희> 그리고 최근에 감명 깊게 읽은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와 같은 시를 바탕 한 에세이도 여러 권 쓰셨습니다.
여성스러운 시를 쓰는 시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절제된 시어들이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삶의 처절한 고통을 맛본 그녀의 시에는 비장함이나 세상에 대한 냉소도 담겨 있습니다. 시인에게 고통은 시의 재료일까요? 마음은 아프지만 소중한 시들이 남았으니 고통이 시인에게 약인지 독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에세이에서도 나오듯 시인이 시를 통해 위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괴롭고도 외로운 삶이었지만 그녀의 시에는 말장난 비슷한 재미있는 구절들이 많습니다. 평소 단어를 거꾸로 말하는 걸 즐긴다는 시의 한 부분처럼 우리말을 가지고 노는 것을 좋아하나봅니다. 오랜 시간 혼자 지내는데도 혼자 여행하는 것을 즐긴다는 시인은 시를 짓는 숙명을 타고난 것 같습니다. 누구랑 함께하기보다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많아야 시를 잘 쓸 수 있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 찾아보니 정신없이 또는 얼빠진 듯이 멀거니 있는 모양을 가리키는 부사입니다. 부사를 명사처럼 사용한 것은 문법을 넘나드는 것이 허용된 시인의 특권일까요? 이 말이 자주 등장하는 '어처구니가 산다'라는 시에 함축된 의미가 마음에 와 닿습니다.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사물, 소위 어처구니가 없는 우리네 삶이지만 바꾸어 생각하면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두커니 생각하면 보잘것없는 일상을 그럼에도 살아나가는 인생은 비단 그녀의 그것만은 아니기에, 우리 모두의 삶과 닮아 있기에 우리는 공감하고 열광하는지 모릅니다.
* 목소리 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