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작가의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책과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그때는 노벨상 수상 작가인 이유에 대해서 잘 생각하지 않았었습니다. 이번에 <눈뜬 자들의 도시>를 읽으며 한 국가나 사회에 국한되지 않고 범세계적으로 적용되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주제와 내용이라 여겼습니다.
이야기는 의사 부인 한 명만 빼고 모두 눈이 멀었던 그 시절로부터 4년이 흘러 선거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비가 몹시 내리는 한 투표소에서는 날씨 때문에 사람들이 투표하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심지어 가족들에게 투표를 독려하는 전화를 합니다. 처음에 한두 명씩 오다가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투표를 합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백지투표가 83%. 어느 정당도 10%를 넘기지 못한 표를 받은 것입니다. 정권을 잡고 있던 사람들은 공포감에 사로잡힙니다. 정권을 전복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에 떨던 나머지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여기는 일들을 합니다.
하얀 것밖에 보이지 않던 눈 멀었던 사람들은 눈이 먼 원인을 밝히지도, 다시 볼 수 있게 된 이유도 모른 채 시간을 보냅니다. 눈먼 병이 전염되듯 정권에 저항하는 이들의 백색 운동도 병처럼 느껴지는 총리와 장관들은 도시를 떠나기도 하고, 폭탄을 터뜨리고, 백색 운동의 주동자를 찾고자 노력합니다.
주제 사라마구의 작품을 두 번째로 접해서인지 독특한 문체가 조금은 익숙해졌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 누구의 대사인지 잘 모르고 지나가기도 하고, 정확한 장면을 그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정독할 수밖에 없는 책입니다. 들고 다니며 읽기보다는 시간을 내어 몇 시간이고 집중하여 읽기에 좋은 책입니다. 시민들의 분노를 다른 곳으로 돌리고자 주동자를 찾는 장면이 너무 우습고, 그 와중에도 권력에 저항하며 용기를 내어 양심선언을 하는 이의 시선을 불안한 마음으로 따라가는 것도 스릴 있었습니다.
어두운 내용으로 일관하는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사회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권력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것인지,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인지 모르지만 무고한 사람을 몰아 죄인으로 만들거나,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다른 이에게 떠넘기는 일들은 비단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세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이 사람의 이름이나 지명이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경정, 경감, 시장, 장관, 의사, 의사부인, 검은 안대를 한 노인처럼 어느 사회에나 있을 만 한 사람들이 책의 인물들입니다.
따옴표가 없어 오히려 내부가 깨끗한 책, 노령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보는 날카로움으로 가득 찬 주제 사라마구의 책은 읽을수록 매력 있게 다가옵니다. 작가에 대해 찾아보다 다른 책도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화된 그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