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 - 조정진
페북에서 최근에 많이 보였고, 특히 얼마전 내가 즐겨보는 일요책방 유튜브에서 극찬한 책이기에 솔직히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을 짐작하고서도 주문해서 집어들었다.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부제에 포함된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약자가 임계장이다. 노인의 힘겨운 노동 일지는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까...
저자는 38년간 공기업에서 일하고 정년 퇴직했다. 우리가 신의 직장이라 부르며 동경해 마지 않는 공기업에서 정년 퇴직까지 한 저자는 자녀의 학비 문제로 퇴직후 임시 계약직으로 내몰린다. 저자는 퇴직 후 약 2년간에 걸쳐 시외버스 배차원, 아파트 경비, 빌딩 경비를 거쳐 버스터미널 경비원으로 일하다 쓰러졌다. 그는 작은 실수를 이유로 실직의 위험을 맞이했고, 자신의 실수도 아닌 높은 사람의 기분에 의해 실직한다. 국가의 각종 법령이나 정책은 다 무용지물이고 가진자의 욕심과 입주민들의 기분이 임계장을 몰아세운다. 그리고 과로로 인해 쓰러진 임계장은 그냥 그대로 실직자가 되어버린다. 정치인들은 소수인 그들보다 다수인 입주민의 편을 들어주고 중소기업이건 대기업이건 상관없이 임시 계약직은 매일같이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에서 말도 안되는 요구사항 속에서 허덕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불편했던 점 중의 하나는, 저자가 이런 이야기를 그냥 담담하게 일지처럼 써나가는 점이다. 눈물샘을 자극하지도 않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도 않는다. 저자는 공기업에서 38년간 일했던 마음가짐 그대로 열악한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한다. 말도 안되는 요구사항도, 인격적인 모독도 실직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묵묵히 참아낸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일을 2년간 버텨내고, 그 일지를 담담하게 책으로 남긴다. 차라리 눈물샘을 자극해서 눈물이라도 흘리면 좀 시원하기라도 할텐데, 읽는 내내 가진 자들, 자신의 욕심만 채우는 자들, 배려가 없는 자들에 대한 분노만 쌓여 가는 것 같다.
희년함께의 남기업 소장님이 올해 초에 오마이뉴스에 연재하신 아파트 회장 분투기가 떠올랐다. 비리가 많은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 그 이야기에서 경비원은 관리소장에게 잡혀서 방해하는 사람들로 나온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경비원 분들은 경비원 분들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한 발버둥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들도 우리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분들이 곧 우리의 아버지들이고, 우리의 어머니들이고 우리의 모습이다. 생각해보면 공기업에서 38년간 일할 때에는 얼마나 번듯했을까? 그런 저자도 퇴직하면서 임시 계약직으로 내몰렸다. 우리도 언젠가는 임시 계약직으로 내몰리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한편 내가 가진 자가 아닌가, 욕심만 채우는 자가 아닌가, 그리고 배려가 없는 자가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내가 밀접하게 자주 만나는 아파트 경비원의 이야기에서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께 친절하게 인사를 건넨적이 언제였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오히려 경비원 아저씨가 불친절하다고 투덜대던 모습이 떠오른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눈이 제대로 치워져 있지 않은 것을 보고 눈쌀을 찌푸렸던 것이 생각난다.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답하던 경비원 아저씨의 이름표를 보고 이름을 불러가면서 은근히 압박했던 일이 떠오른다.
또한, 임시 계약직의 문제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직접 고용이 아닌 간접 고용이 문제의 원인 중 하나가 될것 같다. 입주민과 같은 고용주체는 관리 업체에 이야기하고 실제 일하는 경비원 분들을 직접적으로 압박하지 않기에 도덕적 책임감을 회피할 구멍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관리 업체는 경비원 분들에 대한 징계의 책임을 입주민들에게 돌림으로써 책임을 회피한다. 결국 죄책감이 없이 쏟아지는 징계는 온전히 임시 계약직인 경비원 분들에게 떨어진다. 그분들은 사회의 제일 약한 분들이다. 그분들의 희생으로 우리가 편안함을 누릴 수 있는게 바른 것인지 돌아본다. 그분들이야말로 우리의 추악함을 짊어지고 있는 그리스도가 아닐까...
저자가 경험한 임시 계약직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엔 이번에 코로나가 퍼진 콜센터 직원을 이야기하면서 위안을 삼는다. 마지막까지 씁쓸하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은 임계장들이 주변에 있을지 깨닫지 못하고 지나갈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편리하게 안심하며 삶을 영위할수 있는 것엔 임계장분들이 있기 때문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밤에 집에 올라가면서 경비실을 힐끗 쳐다보았는데, 경비원 아저씨께서는 자리를 비우셨다. 또 어딘가에 순찰을 가셨을까? 아니면 어디에선가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고 계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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