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2월 인문학 모임 책으로 이 책을 선정했습니다. 일전에 솔제니친의 책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재미있게 읽은 적이 있었지만 제목부터 뭔가 묵직한 느낌의 ‘암병동’을 읽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습니다. 정치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하고, 글로 썼던 그는 긴 수용소 생활과, 망명, 그리고 추장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노벨상을 수상도 소련의 방해로 못 갔다고 하니 그의 마음속 한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박해가 오히려 그의 글감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의 본성이 드러나는 정치적 격동기 병원에서의 생활과 수용소의 처절한 희노애락을 누구보다 실감나게 그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는 많은 인간 군상이 등장합니다. 레닌 정권하에서 실권을 잡고 있던 세력과 그들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은 사람들. 이들은 적과 다름없음에도 불구하고 암이라는 대적 앞에서는 모두 같은 편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 때문에 추방을 당하고 수용소로 간 사람들 때문에 괴로움에 시달리면서도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을 바라보는 루사노프, 가정환경과 시대의 불운으로 불만 가득했던 코스토글로토프, 결국 자신이 병을 얻게 된 전문 의료인 돈초바, 길지 않은 병원에서의 시간 속에서 당시 러시아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잘 드러납니다. 무상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여의사에 대한 불이익이 없었던 소련의 한 단면을 보며 놀라기도 했지만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없이 주는 대로 먹는 배급제 이야기에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외면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대에 따라 영웅이 되기도, 범죄자가 되기도 하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시대의 조류에 편승하지 않고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고 살았던 솔제니친.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연민으로 끊임없이 관찰하고 되새겼을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과연 노벨상을 받을만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본문 내용 ---
- 먹으면서 생각했다. 인간의 욕망은 참으로 간단히 생겨날 수 있다고. 그리고 일단 생긴 욕망을 참는 일은 진짜 어려운 거라고. 흑빵 한 조각이 이 세상 최고의 선물이었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이다. 방금까지도 흑빵을 사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검은 연기에 끌려서 이 한 대의 꼬챙이를 뜯고 보니, 그 순간 흑빵을 경멸하는 마음까지 생겨버렸다. (532쪽)
- 다른 오솔길 이북에 주로 아이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다람쥐 한 마리가 미친 듯이 쳇바퀴를 돌리고 있었다. 왜 쳇바퀴를 돌릴까? 설명판에 본능이라고 쓰여 있었다. ... 다람쥐는 아마 그 허황된 행위, 허황된 운동에 마음이 끌렸을 것이다. ... 쳇바퀴를 멈추게 하거나 다람쥐를 바퀴에서 구출하려는 외적인 힘이 없었다. 다람쥐에게 ‘그만 둬요! 그건 쓸데없는 짓이야!’라고 가르쳐줄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다 해결책은 딱 하나, 다람쥐의 죽음인 것이다. 코스토글로토프는 그것까지 바라볼 수가 없어서 자리를 떴다. (5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