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껍지 않은 이 책을 꽤 오랫동안 읽었다. 두 시간이면 다 읽을 만한 분량인데 몇 일이 걸린 이유는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진주현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책 역시 이야기만 쭉 들려주는 다른 소설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물론 주인공과 얽힌 상대방에 대한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소설을 지배하는 것이 이야기라기 보다는 다른 하나의 주제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에게나 조금씩은 있을 '강박증'.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어떤 강박증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는 어떤 반복적인 일을 하거나 겪을 때 숫자를 세는 습관이 있다. 물론 끝까지 세지도 못하고, 집중하지도 못하지만 어떤 일이 반복될 때는 수를 세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걸 강박증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중 정상적인 사람들은 한 명(S) 뿐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두 조금씩 이상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다. 물론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이상한 구석을 가지기 마련이긴 하지만 말이다.
유난히 학생을 괴롭히는 교수와 사랑에 빠진 J는 갑자기 그와 함께 생활하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반복한다. 그를 완전히 잊었다 생각했을 때 갑자기 나타난 어머니는 그의 죽음을 알리고, 그녀는 다시 혼란에 빠진다. 유난히 남다른 구석이 많았던 그는 과거 손을 너무 자주 씻어 색이 변할 정도의 강박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는 그녀를 만나 강박증을 치유한 것일까, 아니면 그녀에게 그의 강박을 전수해준 것일까? 결국 그 강박은 그로부터가 아니라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지 못했던 어머니로부터였던 게 아닐까?
강박증을 비롯한 사람들의 심리에 대한 작가의 고찰이 느껴지는 독특한 소설이었다.
--- 본문 내용 ---
- 다음 날, 나는 힘껏 서점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자리부터 알아봐야 했지만 얼마 동안은 그저 글자에 파묻혀 즐기고 싶었다. 내가 시간을 들여 고른 책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끝과 시작>> , 딱 한 권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열 권이라도 사고 싶었지만 지금 내게 가장 합당한 책은 이것이다. 게다가 내 방에는 그녀의 <<충분하다>>가 있다. 92-93쪽)
* 위 글은 출판사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은 책을 읽고 본인의 솔직한 느낌을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