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기전 집을 나서서 들이킨 첫 숨은 차디찼지만
겨울 새벽만이 주는 그 알싸함과 기분 좋은 상쾌함은
찬공기를 넘어 순식간에 온 몸으로 전달 되었다.
기차에 몸을 싣는다는 생각이 발걸음에 리듬을 선물해 주었다.
하루전날 무작정 떠나기로 한 여행이었다.
바쁠건 없었다.
어차피 무계획이니 조금 느리게 가고 싶었다.
KTX의 신속함이 주는 효율성보다
온몸으로 느끼는 여행을 하자며 무궁화호 열차표를 사 들었다.
기차여행이라는 본질에 다가서기 위함이었다.
전에는 열차플랫폼이 떠남과 이별, 만남을 상징하는 장소였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단순히 이동수단으로만 치부되어버리는것 같아
아쉽기도 하고 그 감성이 그립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은 오래전 느꼈던 그 감성을 느끼고 싶었다.
11A,11B 창쪽과 안쪽좌석을 나란히 차지하니
직사각형의 넓찍한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엉뚱하게 사파리투어가 떠올랐다.
그래 그럼 오늘은 사파리투어를 한번 해볼까?!!
스마트폰 대신 창밖의 풍경을 눈과 가슴에 한껏 담아보자.
열차밖에선 새하얀 눈이 투명하게 날리기 시작했다.
반짝이는 은빛가루들의 향연이 어두운 새벽하늘을 밝게 빛냈다.
열차는 떠날 채비를 하였고 우리는 느릿한 기차안에서 풍경에 취한채 창밖을 응시했다.
기차는 조금씩 속도를 냈다. 점점 더 빠르게 지나가는 창밖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내 눈은 카메라 셔터를 마구 눌러대듯 풍광들을 한아름씩 담기시작했다.
달리는 기차안에서 이내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우리는 지금 인생이라는 기차에 올라타 있는건 아닐까
우리가 몸을 싣고있는 이 열차는 죽음이라는 정해진 목적지를 향해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다.
그런데 달리는 열차안에서도 누군가는 바쁘게 움직이며 앞으로 달려나간다.
저쪽 끝에 앉아 있던 이도 그를 보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뛰기 시작한다.
이에 질세라 걸어가던 사람도 그 뒤를 바싹 쫒는다.
나라고 가만 있을 수야 없지.
그러나 왜 달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디까지 언제까지 달려야 하는지도 알지 못한다.
남들이 달리니 조바심에 뛰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한 참을 달리니 숨이 가빠오고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대론 안되겠다 싶어 다시 좌석에 털썩 주저 앉고 만다 .
숨을 헐떡거리며 앉아있는데 그 열차칸의 분위기는 사뭇 달라 보인다.
사유를 즐기듯 한 손에는 책을 들고 조용히 창밖을 내다 보는 사람들,
동행한 이와 함께 소담을 나누며 환환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
자리에 편안히 앉아 햇살을 맞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우리는 무작정 달리기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성공이라는 환상은 열심히만 살아야한다는 강박감과 함께 조급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더더욱 앞으로만 내달렸다.
달릴수록 시야는 바늘구멍처럼 점점 더 좁아져갔고
뙤약볕 아래 말라가는 진흙처럼 생각도 서서히 굳어갔다.
시간이 없다며 바쁘게 바쁘게 하루하루를 아쉬움없이 떠나보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많은 날들을 그렇게 아무 감정없이 당연한 듯 흘려보냈다.
<모모> 리뷰
동화형식으로 구성된 모모라는 책에는 시간을 아끼며 바쁘게만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바쁘다 바쁘다 하며 살아온 그들이 삶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무엇이 가치있는 지에 관해 진정성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시간은 곧 돈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의 노예로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시간을 쪼개고 쪼개어 바쁘게만 움직이는 이들은 점점 더 조급해지고 시간에 얽매이는 삶을 살게 된다.
그럴수록 여유는 사라지고 자기자신을 잃어버리는 비극을 낳게 된다.
그리고 서서히 고독과 절망이 그들을 집어 삼킨다.
아무도 자신의 삶이 점점 빈곤해지고, 획일화되고, 차가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모모" 본문 중)
그렇다. 삶은 우리 가슴속에 살아 숨쉬고 있어야 한다.
가슴이 전달하는 언어를 읽어내야 비로소 우리의 진짜 목소리를 알아 듣는 것이다.
모모라는 책을 손에 쥐고 떠난 기차여행은 내게 많은 생각을 불러 일으켰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모모" 본문 중)
찰나의 순간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
바로 이 찰나의 순간들의 합이
내 삶이 되는것이다.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온 세상을 다 만져볼 것 처럼
그렇게 살자.
조용히 짧은다짐을 해본다.
새벽은 아침을 피워냈고
창밖으로 펼쳐진 아름다움은 가슴에 아로 새겨지기 시작했다.
수십년전에 우연히 본 책으로 말미암아 분명히 삶이 바뀐것 같아요..
그 후로는 앞만 보고 달리지 않으려고 했고..
지금은 언제나 여유를 잃지 않는듯 합니다.
지금의 낙천적인 성격도 그런 여유속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덕분에 사회적으로 더 크게 성공하지 못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때도 있지만..
글쎄요.. 중요한것은 나의 행복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