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집을 사고 그 집의 지하실에 오디오 룸이나 무비 룸을 만드는 것은 거의 모든 남성의 꿈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그 대부분의 남성들은 오디오 룸의 꿈에 도달하지 못하거나 아직 먼 길에 있기 마련입니다. 저도 그런 상황입니다. 다닥다닥 붙어 사는 와중에 이웃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음악, 게임, 영화 모두에서 언제나 이어폰 헤드폰을 사용합니다. 이어폰과 헤드폰이 엔터테인먼트에만 쓰이는 것도 아닙니다. 날마다 각종 트렌드 관련 소재를 찾는 도중에도 비디오에서 뭔가 설명하는 내용을 들으려면 이어폰을 꺼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도달한 최종 해결책은 커스텀 이어폰과 밀폐형 헤드폰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커스텀 인이어 모니터와 밀폐형 오버이어 헤드폰이 되겠습니다.
커스텀 이어폰은 실리콘이나 폼 소재의 이어팁이 없으며 아크릴 쉘을 귀에 맞춰서 끼우기 때문에 몇 시간씩 착용을 해도 통증이나 불편함이 없습니다. (귓구멍 속에 뭔가 있다는 이질감만 극복하면 됨) 또한 주변 소음이 강력하게 차단되므로 음악은 물론 조용한 부분이 많은 영화를 볼 때에도 무척 유용합니다. 그러나 귓구멍에 오랫동안 이어폰을 끼우고 있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이어폰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더 큰 스피커의 웅장한 소리를 듣고 싶기도 하고요. 그럴 때는 커다란 밀폐형 헤드폰이 필요합니다. 이어패드가 귓바퀴에 올라오는 온이어(On-ear) 타입보다 귓바퀴 둘레를 덮는 오버이어(Over-ear) 타입이 더 편하고, 헤드폰의 헤드밴드와 이어패드 쿠션이 푹신해야 하며, 어느 정도 통풍도 되어야 하고, 주변의 방해를 받지 않을 만큼 소음 차단도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저처럼 옆집을 배려하면서도 온전히 AV의 세계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AV가 ‘오디오와 비디오’라는 뜻임을 다시 강조한다!)
프랑스의 오디오 기업 ‘포칼(Focal)’은 넘사벽 수준의 오픈형 헤드폰 ‘유토피아(Utopia)’부터 시작해서 더욱 편안한 소리의 ‘일리어(Elear)’와 더욱 깨끗한 소리의 ‘클리어(Clear)’를 만들어냈습니다. 원래 스피커의 드라이버 유닛을 만드는 회사라서 헤드폰 속 다이내믹 드라이버를 완전히 새로운 구조로 개발했고, 베릴륨 트위터의 내공으로 헤드폰 드라이버의 진동판도 베릴륨과 알루미늄 마그네슘 합금을 적용했습니다. (비닐에 금속 코팅이 아니라 순수 금속 진동판) 포칼 유토피아, 클리어, 일리어는 소리를 선명하게 전달하는 능력과 라우드 스피커처럼 공간을 묘사하는 능력이 모두 갖춰진 헤드폰 삼형제입니다. 그러나! 삼형제가 모두 오픈형 헤드폰입니다. 주변이 조용해야만 제대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즉, 포칼에서도 이제 밀폐형 헤드폰을 내놓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포칼의 ‘엘레지아(Elegia)’는 가격으로 볼 때 일리어와 유사한 수준의 밀폐형 오버이어 헤드폰입니다. 저는 이 제품의 글로벌 오픈이 시작되기 전부터 대여를 해서 약 한 달 동안 사용해보았는데요. 진지한 음악 감상 중심으로 사용했던 유토피아, 클리어, 일리어와 달리 엘레지아는 넷플릭스와 유튜브 보기에 주로 투입되었습니다. 또한 책상 위에 준비해둔 거치형 시스템보다도 아이패드의 헤드폰잭에 바로 끼워서 감상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다른 리뷰용 헤드폰들도 생활 속에서 꾸준히 사용한 후 글을 쓰지만, 포칼 엘레지아만큼 오랫동안 머리에 쓰고 다녔던 헤드폰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소리가 좋고 착용감이 좋아서 마치 제 몸의 일부처럼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그 후 리뷰용 제품을 반납하면서 저는 ‘이 놈을 구입할 터이니 반드시 준비해주시오’라고 판매처에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포칼 엘레지아는 제가 찾던 바로 그 헤드폰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AV 경험을 헤드폰으로만 챙겨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실상 최고의 헤드폰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소리가 선명하고 오래 듣기 편합니다. 일리어 같은 중.저음과 클리어 같은 고음을 지닌 헤드폰입니다. 고가의 헤드폰용 시스템에 연결해서 듣는 하이엔드 품목인데 각종 휴대용 기기에서도 쉽게 구동할 수 있습니다.
2) 굉장히 편안해서 머리에 오랫동안 쓸 수 있습니다. 일리어와 동일한 착용감이라고 예상하셔도 됩니다. 헤드폰 무게는 묵직한 편인데 헤드밴드와 이어패드의 하중 분배가 잘 되어서 머리 정수리와 귓바퀴가 눌리지 않습니다.
3) 소음 차단이 잘 됩니다. 헤드폰 밖으로 소리가 새지도 않습니다. 이어컵 내부의 흡음 설계로 오디오 품질을 확보함과 동시에 밀폐형 헤드폰 본연의 소음 차단을 제공합니다.
4) 외장 디자인이 세련됐고 짧은 케이블이 포함되며 캐링 케이스도 있으니 아웃도어 헤드폰으로 쓸 수 있습니다. 집에서도 길에서도 즐겁게 사용할 수 있는 생활용 헤드폰입니다. 이게 정말 큰 장점인데요. 일리어와 클리어의 장점만 지닌 소리를 어디에서나 방해없이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5) 가격이 좋습니다. 100만원 근처이지만 하이엔드급 사운드와 하이엔드급 편안함에 소음 차단 효과까지 더한 헤드폰이라서 저는 아주 좋은 가격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구입 확정 상태입니다.
포칼 엘레지아를 다른 분이 구입해서 사용한다면 저와 다른 느낌 몇 가지는 나올 수 있겠으나, 이 5개 항목은 예외없이 통할 것이라 자신합니다. 각자의 취향을 따진다면 ‘내가 포칼 헤드폰의 밝은 음색을 좋아하는가?’, ‘커다란 헤드폰을 머리에 쓰는 것이 편안한가?’ - 이런 정도의 선택일 것입니다. 이 글의 제목에 ‘최상급’이라는 단어를 쓴 이유도 제가 과격하게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헤드폰과 케이스가 모두 잘 생겼음
그러면 포칼 엘레지아를 구입했다고 가정하고 언박싱(Unboxing)을 상상해봅시다. 제품 박스는 약간 작은 편인데 뚜껑을 열어보면 헤드폰이 담긴 캐링 케이스가 나옵니다. 포칼 클리어에서 처음 등장했던 마치 패션 아이템 같은 멋진 디자인의 가방입니다. 250 x 240 x 120mm 사이즈이며 손잡이가 있어서 간단히 들고 다닐 수 있습니다. 현대적인 그레이 톤의 패브릭 커버와 튼튼한 가죽 손잡이가 직접 손으로 만져봐도 고급스러운 인상을 줄 것입니다.
캐링 케이스 속에는 엘레지아 본체, 케이블 1개, 6.3mm 변환 어댑터가 들어 있습니다. 다른 포칼 헤드폰과 마찬가지로 엘레지아도 케이블 탈착이 쉬우므로 케이스에 담을 때 케이블을 분리하게 됩니다. 케이스 중앙에 격벽이 있어서 케이블을 깔끔하게 담을 수 있고요. 6.3mm 변환 어댑터는 나사식으로 끼우는 것인데 이것도 분리해서 케이스 위쪽에 끼워둘 수 있습니다.
엘레지아는 1.2미터 길이의 케이블 1개가 있는데, 딱 보면 알 수 있듯이 클리어에 들어 있는 케이블과 동일한 품목입니다. 유토피아와 일리어에 포함되는 검정색의 아주 긴 케이블보다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는 케이블이므로 별다른 불만 없이 쓸 수 있겠습니다. 피복이 두꺼운 패브릭 소재이고 케이블이 원래 굵은 편이지만 길이가 짧기 때문에 이동하면서 사용하기에는 편합니다.
엘레지아의 무게는 430g이라고 하는데요. 헤드밴드와 이어패드의 설계가 하중을 분산시켜줘서 체감 무게는 훨씬 가볍습니다. 또한 헤드밴드 길이가 넉넉해서 머리 큰 사람도 편하게 착용할 수 있습니다. 제품의 전체 색상은 블랙과 실버의 차분한 조합이며 헤드밴드와 이어컵을 연결한 요크(Yoke)가 알루미늄 덩어리입니다. 그리고 이어컵 중앙에서 반짝거리는 원형의 금속 데코레이션이 멋을 냅니다. 이 금속 데코의 포칼 로고가 있는 부분에 작은 베이스 포트가 숨겨진 듯 합니다. 겉으로는 구멍이 보이지 않지만 음악을 재생한 후 이어패드 쪽을 손으로 막고 포칼 로고 근처에 귀를 대면 아주 작게 소리가 들리거든요.
이어패드는 뽀송한 마이크로 파이버 소재이며 미세한 구멍으로 통풍 효과를 제공합니다. 헤드폰을 처음 착용해보면 푹신한 극세사 이불을 귀에 문지르는 듯한 느낌이 들 겁니다. 그리고 상당한 소음 차단 효과가 있습니다. 음악을 틀지 않고 헤드폰만 머리에 써도 주변 소음이 줄어들 정도입니다. 극히 조용한 장소에서 들어보면 포칼 로고 부분에서 미세하게 소리가 새어 나오지만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닙니다. 즉, 엘레지아는 소음을 차단하고 누음을 방지하는 밀폐형 헤드폰의 기본을 지킵니다.
엘레지아의 이어컵 외부에는 방사형의 음각 점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것은 시각적 디자인이기도 하지만 헤드폰의 소리에도 미세한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어컵 내부에서 소리가 울릴 때 외부의 깎인 부분이 진동을 넓게 퍼뜨리거나 특정 부분으로 집중시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라우드 스피커 회사들은 원하는 소리를 만들기 위해서 스피커 인클로저(하우징)에 온갖 실험을 하는데요. 라우드 스피커의 축소판인 헤드폰에서도 그러한 실험이 이뤄집니다.
새롭게 적용된 드라이버와 이어컵 내부 구조
포칼의 유토피아, 클리어, 일리어에는 다른 헤드폰들의 드라이버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의 드라이버가 들어 있습니다. 40mm 지름의 금속 진동판 테두리에 링 모양의 자석을 배치한 구조입니다. 이것의 단면을 보면 M자처럼 보이기 때문에 ‘M-shape Dome’이라고 부른답니다. 이를 통해 진동판의 울림을 깨끗하게 만들 수 있으며, 자석이 진동판 후면을 가리지 않으니 더욱 향상된 개방감과 저음 울림이 확보됩니다.
그런데 엘레지아의 내부 구조도를 보면 뭔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클리어나 일리어의 드라이버를 그대로 담은 게 아니라, 밀폐형의 이어컵을 위해서 드라이버를 새로 제작한 것입니다. 자석 중앙의 구멍이 더 작으며 드라이버를 하우징에 고정하는 방식도 조금 다릅니다.
위의 구조도를 보면 엘레지아의 이어컵 내부에도 사운드 튜닝을 위한 설계가 보입니다. 촘촘한 네모꼴 벌집 구조가 흡음 효과를 내는 것이라 예상합니다. 이는 하우징 속에서 울리는 저음을 조율할 것이며 이어컵에서 외부 소음을 흡수하는 효과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포칼 엘레지아의 소음 차단 효과가 좋은 모양입니다.
또 한 가지 참조할 점은 진동판과 보이스 코일의 소재입니다. 진동판의 소재는 일리어, 엘레지아, 클리어가 모두 알루미늄 마그네슘 합금을 사용합니다. 유토피아는 다른 차원의 베릴륨이니까 넘어갑시다. 보이스 코일 소재는 일리어만 구리 알루미늄 합금이며 엘레지아와 클리어는 순수 구리입니다. 즉, 엘레지아의 드라이버는 진동판이 일리어, 클리어와 같고 보이스 코일은 클리어와 같습니다. 이러한 소재 활용만 봐도 엘레지아가 일리어와 클리어의 유전자를 모두 지녔으리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참고 : 이어패드의 소재와 타공 처리도 소리에 영향을 줍니다. 이어패드 표면에 구멍을 뚫는 타공 처리는 통풍 효과와 더불어 공간감이 향상되고 저음 울림을 살짝 약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어패드에 타공 처리가 있는 클리어는 일리어, 엘레지아보다 저음이 조금 약하고 타격이 탄탄합니다. 케이블 차이도 있는데요. 일리어의 아주 긴 검정색 케이블은 고음을 조금 가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리어는 따뜻한 소리의 헤드폰으로 인식되었으나, 클리어부터 포함되기 시작한 짧은 케이블을 일리어에 끼워 보면 고음이 더욱 선명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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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