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사라졌습니다.
홍콩을 상징하던 대표적인 건물이였죠.
디스토피아의 절정이죠.
증축에 증축으로 만들어진 장관입니다.
쥐와 바퀴벌레가 그렇게 많았다고 하죠
구룡성채 철거할때 주변 지역이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무슨 생각을 하며 서 있던것일까요?
작은 도시였기에 다 있었습니다.
인구 밀집이 극심하다보니 쓰레기 역시 넘쳐 났습니다.
생선도 손질하고
일반 가정집의 모습 입니다.
공장도 있고
극악의 랜딩 환경으로 초보 기장은 보내지 않았던 카이탁 공항으로 가는 케세이 퍼시픽 여객기
그래도 우편 배달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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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로 더 올려드립니다.
저 아이들도 이젠 중년이 되었겠네요.
홍콩인들이 즐겨 먹는 어묵을 튀겨내던 공장 같네요
네 야매처럼 보이는 치과도 있었습니다.
정말 작은 도시와 비슷했다고 합니다.
정말 쩐다라는 말밖에 안나오던 곳이죠.
p.s : 문제가 될만한 내용들은 삭제를 했습니다.
당시 홍콩 정부의 가장 큰 문제중 하나였습니다.
홍콩이 영국으로 유입되면서 이곳만 청나라의 영토로 남게 되면서 문제가 시작된 것인데
삼합회의 유입으로 인해 치외법권의 지역이였고 아비정전을 촬영했던 양조위는 이곳을 홍콩의 Sin City라고 표현했습니다.
70년대 이후 무허가 증축이 만연하면서 급속도로 슬럼가가 되었습니다.
0.03km의 면적에 5만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었습니다. 인구밀도가 1,900,000명/km2로 역사상 최고의 인구밀도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옆에 있던 카이탁 공항이 유명한데 그 이유가 주변 건물을 6층이상 짓지 못하는 규제가 있었지만 치외법권이였던 구룡성채는 무시하고 15층까지 불법 증축이 되었습니다(!!!)
27억 HKD를 들여서 구룡성채에 살던 3만3천여명의 주민들을 이주 시킵니다.(1991~1992년동안)
철거는 1993~1994년에 이뤄졌고 그렇게 구룡성채는 사라졌습니다.
매춘, 마약등의 강력범죄로 그리고 무엇보다 붕괴위험이 커서 철거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시민들의 그런 의견이 있긴 했습니다.
워낙 땅덩어리가 좁은 홍콩이고 구룡성채 자체가 홍콩의 치부였다보니 공원으로 재개발 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홍콩 사람들이 보는 구룡성채의 이미지와 디스토피아의 절정으로 보던 외부인들간 의식차이가 컸습니다.)
지금은 남미의 카르텔이 지배하는 지역이 이어 받았구요.
청나라와 영국간의 전쟁으로 생겨난 치외법권 지역이 생기면서 생긴 문제가 1990년도까지 이어진거다보니
그 문제가 정말 심각했죠.
다만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기 전에 해결이 되어서 다행이지
중국 정부가 나섰다면 아마 더 심각한 상황이 생겼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지적 감사합니다.
청켱맨선이라 미도맨션이라구 침사추이 중심부에...
홍콩가면 숙박해 보시길...
무서웠어요....;;;
치외법권으로 그 누구의 보호도 못받게 되면서 생긴 문제죠
그리고 굳이 못사는 사람들의 사진을 가져와서 비아냥 거린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당시 문화가 그렇습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았구요.
중국이나 홍콩(구룡반도) 가시면 남자들 아무대서나 웃통 까고 일하고 밥먹고 생활하는 모습들...
그냥 있는 모습 그대로를 담은 다큐멘터리 기록인거죠.
구룡성채과 나오는 사진이나 영화들을
/Volla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