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들은 묻는다.
무슨 남자 카톡을 보냐고
어떤 사이냐고
그때 그 사람이냐고.
2.
어디선가 봤는데 신은 고약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그랬다. 그게 누구더라 되게 똑똑한 사람이였던거 같은데.
3.
20대의 굴곡은 성장통이라 생각해서, 20대 초반에는
자신의 어려움이나 힘든 것들을 이야기하더라도, 그게 누구나 비슷하다는 걸
깨닿는 저마다의 나이가 되면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쓴웃음으로 동조해주는 정도로 끝난다.
길바닥에 너부러진 빈 플라스틱 컵만큼 석박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지금처럼 수년 전도 똑같았다.
좋은 대학원에 입학했다며 과분한 칭찬과 격려 속에
주변의 예상외로 내가 택한 입학전 1,2월의 2달의 시간은
20살때나 했을 법한 강남 어딘가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술집 아르바이트였다.
사장은 내게 웃으며 물었다.
'제가 살아온 환경이 그렇긴 하지만, 제 주변에 있는 사람들 중 학벌이 제일 좋은데 왜 이런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하세요?.
아 물론 이 일이 나쁘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의아해서 묻습니다.'
20살 기분을 내고 싶었다했나 뭐라 했나 대충한 내 대답에 사장은 기분이 좋은지 2달 동안 잘 일해보자고 악수를 청했었다. 신망이 느껴지는 두터운 손이였다.
4.
일하는 첫날. 사장은 쉬는 날이라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달에 1번 있을까 말까한 쉬는 날이였는데,
어색하게 사장 외의 가게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는데, 유독 눈에 들어오는 선한 인상의 여자가 있었다.
웃을 때 눈이 반달처럼 되고 아주 흰 여자였는데, 경력이 조금 되었는지 몰라도
주방일을 포함한 매장의 전반적인 일을 다 다룰 줄 아는 그런 사람이였다.
주방에 있는 다른 남직원과도 굉장히 애틋해 보여, 이 가게는 정말 사람들끼리 우애가 좋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아직도 기억 나는게, 아무래도 술을 파는 업종이다 보니 근무 시간이 저녁부터 이른 새벽까지 였는데,
새벽 3시정도가 되면 그 분이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한명한명 과할 정도로 정중하게 근무시간이 다되어서
먼저 가겠다고 미안하다고 하며 정말 그런 얼굴로 인사를 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낮에는 전문적인 스포츠 강사라고 했었다.
어쩐지 너무 몸매가 드러나는 레깅스를 입는데도 과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은게 그 탓이였나.
5.
사장은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의 인생사들을 내게 곧잘 토로하곤 했다.
보통 일이 끝나면 새벽 5시 전후가 되기 마련인데, 주에 2회정도씩은 나와 함께 술을 마시고 귀가하곤 했다.
별거 아니라는 그의 개인사는 인생 역경까진 아닐지 몰라도 대다수가 고생했다고 할만한 그런 내용이였다.
삼만원 들고 서울에 20살에 올라와 20년만에 10억짜리 가게를 꾸린다는 것은 모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니까.
사장은 자신에게 남은 건 시골에 계신 노모와 자신의 아내라고 했다.
아내를 생각만 하면 가슴이 뜨거워져서 자신이 여태까지 살아 있기로 결심한 20대의 어느 순간의 결정이 기특하다고 했다.
자신에겐 그녀가 전부라 했었다.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술 담배를 일체하지 않으며 항상 운동하는 그녀가 나에겐 최고라고 말했다.
사장의 어쩐지 운동하는 아내를 칭찬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자신의 커다란 배를 문질렀다.
6.
어느 날은 술이 좀 되어 가게 근처에 있는 사장 집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가게 되었다.
사장의 강력한 권유이기도 했지만 못내 그 사랑에 넘치는 이 사장의 아내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한 것도 있었다.
사장은 궂은 농담을 잘 쳤었는데, 사장 집에 들어가기 전에 맥주 한두캔을 사며
자신의 아내가 이쁘다고 자기가 잘 떄 덮치거나 하면 안되다며 낄낄 거렸다. 나는 아내의 얼굴을 보고 정하겠다고 응수를 뒀다.
사장은 가슴 정도는 몰래 만져도 봐주겠다 했지만 아마 만질게 없을거라고 하며 동네가 떠나갈 듯이 웃었다.
그런 사장이 좋았다.
7.
사장의 집은 꽤 넓었다. 둘이 산다고 했었는데 한 50평정도 되었으려나.
사장은 역시 열심히 살았구나. 라고 생각하며 이 일궈놓은 재산보다 더 소중한 아내라니 하며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집에 들어갔을 떄 나를 맞이해준 건 레깅스가 너무 잘 어울리는 그녀였다.
요건 몰랐지 라며 활짝 웃는 그녀를 보고 사장의 장난기 어린 얼굴을 보았을 때
약간 약이 올라 한마디 했다.
사장님이 사모님 가슴 만져도 된다고 했어요.
8.
재밌었다. 술이 워낙되어 자리가 길진 않았는데, 사모는 젊은 남자랑 술 마시는게 너무 오랜만이라며,
일년에 한번 있을 법한 맥주 한캔을 같이 마셔주었다.
카라바죠씨가 일을 열심히 해주어서 자신이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했다.
감사합니다 사모님이라고 바뀐 존대와 존칭에 사모는 멋쩍었는지 팔로 내 목을 감으며 한번 더 말해보라고 했다.
켁켁 연기하는 와중에 사장은 조심하라고 카라바죠가 가슴 만질수도 있다고 하며 놀려댔고, 사모는 어? 나 그런거 없는데 라고 하며 적당히 자리를 끝마쳤던거 같다. 사실 끝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9.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찾아갔을 때는 사장이 바뀌어 있었다. 그 전에도 연에 한두번 정도는 놀러 갔었고,
갈때 마다 어쩐지 옆에 있는 사람이 달라져 사장의 짖궂은 농담을 각오하라며 그때 같이 갔던 옆 사람에게 언질을 주었으니까.
사람 감이라는게 참 무서운게 1년만에 가는 때라 그런지 혹시 사장이 바뀌진 않았을까 했었고 그게 맞았었다.
주방에는 내가 알고 있던 주방실장님이 그대로 계셨는데, 오랜만이라는 말과 함께 혹시 소식을 들었었냐고 했었다.
불안했다.
10.
사모는 아주 어려운 곳에 암이 퍼져 이미 검사를 했을때는 4기라고 했었다.
검사결과가 나오자마자 사장은 모든 가게와 집기를 정리하고 노모가 계신 산 좋고 물 좋은 본인의 고향으로 내려갔다고 했다.
11.
시간이 지나 사장의 프로필 사진이 단발 머리의 사모와 같이 찍은 것으로 바뀐적이 있었다. 너무 반가웠다.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아무리 아내라도 프로필 사진에 굳이 죽은 사람의 사진을 올려두진 않겠지. 주변에서 묻기도 엄청 물어볼테고 여러가지로 부담스러우니까.'
사장에게 잘 지내냐고 문자를 쓰다가 한 두번 고개를 갸웃거리고 이내 지워버렸었다.
12.
그 이후로 나는 공공연히 이 이야기를 축약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하곤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내가 가끔씩 카톡 프사를 볼 떄마다
그 사장님이냐며 물었고 그게 맞을때도 아니라 하며 웃고 넘겼던거 같다.
친구들은 어떻게 술 담배도 안하고 평생을 식이요법 하며 운동한 사람이 암에 걸릴 수 있냐면서,
역시 신은 고약하다며 그러니 나는 술 담배를 해야지 하는 중국식 결론을 종종 내리며 웃었고,
나는 누군가의 죽음이 누군가들에게는 웃음의 소재가 되는 인간의 아이러니에 기분이 이상해지기도 했다.
다만 신이 고약하다는 그 말은 누가 했는진 몰라도 참 그럴싸하게 그 부부와 맞는다는 생각에는 동의했다.
13.
얼마 전에 본 사장의 프로필 사진이 아름다운 노란 꽃으로 바뀌어있었다.
그건 그렇고 명박이새끼때문에 덧글이 가뭄이네요 ㅠㅠ
운동도 열심히 하고 남편한테 사랑도 많이 받았을것 같았으면 흔히 말하는 병요소가 없는데...
신이 정말 고약하네요..
건강은 정말 어려운거 같아요
내용이 슬퍼서 더 그런거 같아요 ㅠ
글 잘 읽었습니다 :D
다음에도 또 읽어주세요.
술술 읽히네요..
감사합니다 ㅎㅎ